이범석 "잘못된 결정"…재검토 공약 후 사업계획 180도 수정
여야 극한 대치로 정례회 파행…원포인트 임시회서 철거결정

60년 가까이 청주시청 공무원들의 업무공간이자 시민들의 민원 해결 공간으로 쓰인 옛 청주시청 본관이 내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4년 만에 존치에서 철거로…옛 청주시청 본관 '역사속으로'
청주시의회가 지난 22일 여야의 극한 대립 끝에 새 청주시청사 건립 부지 안에 있는 이 본관 철거 예산을 통과시켜서다.

4년 전의 존치 결정이 번복되면서 기존 의회동과 함께 상반기에 헐릴 운명을 맞았다.

새 시청사와 의회청사 건립은 옛 청주시와 옛 청원군의 행정구역 자율 통합의 산물이다.

24일 시에 따르면 협소한 사무공간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청주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을 등에 업고 통합시청사 건립사업에 시동을 걸어 2013년 6월 후보지(당시 청사 일대)를 확정했다.

이후 사업 예정지 내 충북농협 본부, 청주병원, 청석학원 소유 건물 매입 추진 등 절차를 밟았다.

본관도 철거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으나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2017년 "근대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며 보존 주장을 폈다.

시는 2018년 녹색청주협의회 주도로 시민 의견을 수렴했고, 본관 존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시청사건립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4년 만에 존치에서 철거로…옛 청주시청 본관 '역사속으로'
특별위는 그해 11월 회의를 열어 문화재청이 문화재 등록을 권고한 시청 본관 건물을 존치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본관은 청주시의 전통적 지리관인 행주형(行舟形) 입지를 반영한 역사적 가치와 당시 건축 시설의 특성, 공공시설의 특성을 잘 살린 문화유산이라는 게 문화재청 입장이었다.

1965년 준공된 본관동은 고 강명구 건축가가 설계했다.

애초 지하 1층, 지상 3층에 연면적 2천1㎡였으나 1983년 지상 4층(연면적 2천639㎡)으로 증축됐다.

시는 본관 존치를 전제로 국제설계 공모를 진행해 노르웨이의 스노헤타사 작품을 새 청사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여기에 98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지방선거로 사정이 달라졌다.

시는 민선 8기 이범석 시장의 새 청사 건립사업 전면 재검토 공약에 따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민선 7기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계획을 180도 수정했다.

백두흠 공공시설과장은 지난 10월 18일 "신청사건립TF의 의견을 수용해 설계 재공모를 하고 본관은 철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같은 달 시정질문 답변에서 "민선 7기 시청사건립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문화재청 직원이 '본관동 철거 결정 시 문화재로 직권 등록하겠다'고 언급해 논의의 실익이 없어지면서 존치 결정이 났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4년 만에 존치에서 철거로…옛 청주시청 본관 '역사속으로'
그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나 합의가 없었던 결정이었고, 시는 그 어느 때도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한 적이 없다"라고도 했다.

시는 기형적 구조, 안전등급 미흡, 유지관리비 과다, 구조보강 등 추가 공사비 소요, 민선 7기 당시 사회적 합의 과정의 비공정성, 일본식 건축양식 답습 논란 등을 본관동 존치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시장은 지난 9월 시정질문 답변에서는 "일본에서 공부한 설계자가 일본 근대건축가의 영향을 받아 옥탑(첨탑)은 후지산, 로비 천장은 욱일기를 형상화해 일본 전통 양식의 난간을 표현하는 등 일본식 건축양식을 모방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간헐적으로 제기됐던 왜색 논란에 불을 지폈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펄쩍 뛰었다.

4년 만에 존치에서 철거로…옛 청주시청 본관 '역사속으로'
문화재청의 비상근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 각 분과위원장단도 입장문을 내 "청주시는 철거 절차를 중단하고, 문화재 가치 보존과 합리적인 보존·방안 마련을 위해 문화재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화 절차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문화재청은 "옛 청주시청 본관은 2004년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조사, 2013년 근현대 건축가 작품 건축·시설 일제조사, 2014년 근현대 공공행정시설 일제조사 결과 등에 따라 문화재 등록검토 대상으로 분류돼 등록절차 이행을 포함한 보존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며 철거 절차 재검토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주 원도심활성화추진단은 "옛 본관은 지난해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으로 판정돼 사용 제한을 결정해야 하는 건축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일본식 전통 난간 구조와 로비 천장의 욱일기 형상 논란 등 외래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고, 보존을 위해서는 매년 막대한 유지보수비가 소요되는 등 문화재 등록 제외 대상에 해당해 철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년 만에 존치에서 철거로…옛 청주시청 본관 '역사속으로'
철거 찬반 논란은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1명씩으로 동수인 시의회로 번졌다.

제2차 정례회에서 민주당이 수적 우위에 있는 도시건설위원회는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문화재청 협의가 우선이라며 집행부가 신청한 본관 철거예산 17억4천2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1명 더 많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 예산을 전액 되살렸다.

여야는 본관 철거 문제에 대한 협상을 벌였으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대치로 일관했다.

민주당은 본관 철거비를 뺀 수정안을 만들어 처리하자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국민의힘은 '선 예산 통과, 후 여론조사·문화재청 협의'를 주장했다.

결국 민주당의 본회의장 입장 거부로 청주시의 내년도 예산안은 지난 20일 끝난 정례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4년 만에 존치에서 철거로…옛 청주시청 본관 '역사속으로'
시의회는 지난 22일 원포인트 임시회를 소집했는데 국민의힘 전원에다 민주당 1명이 가세하면서 의결정족수가 성립됐고, 파행 속에 내년도 예산안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시는 일각에서 요구하는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직권 등록 등 변수가 없는 한 내년 상반기에 본관을 헐고 2025년 새 청사 건립사업 착공을 위한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