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서 주목받은 한국계 캐나다 작가…'사라진 소녀들의 숲' 국내 출간
조선시대 공녀제 다룬 미스터리…"한국 역사의 새로운 관점 제시하고파"
허주은 "한국 역사 접하며 집에 돌아왔단 벅찬 감정 느꼈죠"
"한국 역사가 아름답고 복잡하고 비극적이어서 사랑에 빠졌어요.

이 역사가 저의 일부분이란 걸 깨달으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벅찬 감정을 느꼈죠."
한국계 캐나다 작가 허주은(33)은 2020년부터 한국 역사를 소재로 무려 세 편의 장편 소설을 펴냈다.

첫 소설 '뼈의 침묵'(The Silence of Bones·2020)과 '사라진 소녀들의 숲'(The Forest of Stolen Girls·2021), '붉은 궁'(The Red Palace·2022)은 모두 조선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한국 역사에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했다.

한국 역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 더 깊이 알고 싶을 때마다 그 감정을 편지 쓰듯이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중 '사라진 소녀들의 숲'(미디어창비)이 이달 국내에 번역(유혜인) 출간됐다.

허주은 "한국 역사 접하며 집에 돌아왔단 벅찬 감정 느꼈죠"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로 만난 허주은은 "소설을 통해 제가 사랑에 빠진 한국 역사를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9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신학 공부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2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3살 때부터 캐나다에서 성장했다.

영미문학권에서 자란 그는 이민진('파친코'), 김주혜('작은 땅의 야수들') 등의 디아스포라 문학(이산문학) 작가들처럼 K-스토리로 해외에서 먼저 호평받은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북미에서 출간된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올해 세계적인 미스터리 문학상인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오르고, 미국도서관협회와 미국청소년도서관협회의 청소년 추천 도서에 선정됐다.

조선시대 여성 살인 사건을 다룬 전작 '뼈의 침묵'도 지난해 에드거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붉은 궁'은 미국 경제지 포브스 선정 '2022년 가장 기대되는 책'에 뽑혔다.

허주은은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고국 역사(homeland history)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저도 한국 작가들만큼 역사를 이해하며 쓰지 못할 거란 절망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때 용기를 준 건 어머니였다.

그는 "엄마가 '너만의 악센트(accent·어조)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며 "숲속에 있으면 나무밖에 보지 못하지만, 멀리 있으면 숲 전체가 보이지 않나.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저만의 악센트로 한국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허주은 "한국 역사 접하며 집에 돌아왔단 벅찬 감정 느꼈죠"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15세기 초 조선, 제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소녀들 실종 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소녀 민환이는 남장을 하고서 제주로 건너가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사라진 소녀들의 공통점은 가난한 집 출신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점. 사건 이면에는 조선에 여전히 남아있던 공녀(貢女) 제도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자리한다.

소설의 모티프가 된 건 고려시대 학자 이곡이 중국에 어린 여성을 공물로 바치는 공녀 제도를 폐지해달라고 원나라 황제에게 쓴 실제 편지였다.

허주은은 "고려와 조선시대 서한과 문서를 모은 '에피스톨러리 코리아'(Epistolary Korea)란 책에서 이곡의 청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제가 두 아이 엄마인데, 아이들을 빼앗긴 비극적인 역사를 잊는 건 큰 불행 같았다"고 기억했다.

주인공으로 그 시대에는 드문, 주체적인 소녀를 내세운 건 "유교문화 속에서 여성이 장애물을 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서사의 신선함 덕에 이 작품은 영화 제작을 위한 판권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국어가 서툰 그는 자료 조사를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제주를 찾아 박물관과 전통 가옥을 둘러본 뒤 해안가와 내륙의 가옥 형태가 다르다는 점까지 소설에 세세하게 반영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지만, 그가 처음부터 한국 역사에 관심을 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매료된 그는 10년 넘게 영국 역사를 바탕으로 한 책을 쓰는 데 매진했다.

그러나 출판사 등에서 100번 넘게 거절을 당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서관에서 영어로 번역된 한무숙의 역사 소설 '만남'(Encounter)을 접했다.

그는 "처음 읽은 한국 책인데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었다"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는데, 이때 한국 역사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돌아봤다.

2024년 출간할 그의 차기작 '어 크레인 어몽 울브스'(A crane among wolves)도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궁녀로 끌려간 자매를 되찾으려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