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교동에서 2년째 맥주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52)는 올해 초 가게 옥상에 설치된 10㎡ 너비의 좌석을 철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공간은 이전 주인이 설치했다가 불법 증축으로 적발된 곳이다. 김씨는 내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불법’이라는 딱지가 부담됐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철거 공사를 금세 포기했다. 행정 절차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관련 법규에 맞춰 야외 좌석을 마련하려면 먼저 기존 증축물을 철거해 구청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어 건축 허가를 새로 받은 뒤 다시 야외 공간을 설치해야 한다. 철거 비용은 물론 영업 손실도 부담이다. 김씨는 “가뜩이나 장사가 어려운데 정부가 좀 더 유연한 기준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불법건축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현행 건축 법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건축법을 일일이 따져가면서 장사하라는 건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 한옥을 개조해 식당 및 카페로 창업한 곳이 많은 서울 익선동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는 ‘□’자 형태의 한옥 내부 공간을 증축한 곳도 있다. 가운데 마당 위에 지붕을 덮어 야외 테이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손님이 많이 찾지만, 원칙적으론 건축 법규를 위반한 사례다. 각 동네와 상황에 맞게끔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규제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과 교수는 에어컨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 지어진 건물을 예로 들었다. 건물이 지어지고 난 다음 에어컨이 보급되자 실외기를 놓을 자리가 없는 건물들은 법규를 위반하면서 건물 외부를 증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시대 흐름에 따라 건물의 활용 방식도 변화한다”며 “불법건축물에 대해 유연한 대응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건축물의 시정 책임만 강조하는 지금의 정책을 손봐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불법 상태를 시정한 건물에 인센티브를 줘 자발적인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광식/원종환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