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기를 맞아 줄어들던 만기 3년 이상 장기 정기예금 가입액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금리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 당국마저 은행권에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권고하자 현재 금리를 고점으로 인식한 금융 소비자들이 장기 예금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신금리 고점?…만기 3년 이상 예금 3배↑

6개월 새 가입액 3배 ‘껑충’

이달 들어 지난 21일까지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3년 이상 정기예금 가입액(신규 취급액)은 7991억원으로 지난 6월(2376억원)보다 세 배 이상 증가했다. 4대 은행의 3년 이상 정기예금 신규 취급액은 올 6~9월 2000억~4000억원대를 유지하다 10월 1조216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달과 이달엔 신규 가입액이 1조원 밑으로 떨어졌지만 올해 중반과 비교하면 여전히 증가세가 가파르다. 같은 기간 1년 미만 정기예금 가입액은 10월 31조784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달엔 13조5865억원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올 하반기 들어 3년 이상 정기예금 가입액이 증가한 것은 금리가 고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이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더 높은 금리로 갈아타려는 금융 소비자들은 3~6개월짜리 단기 예금에 앞다퉈 가입했다.

하지만 지난달 연 5%대 중반까지 올라갔던 예금금리가 연 4%대까지 내려오는 등 하락세가 감지되자 현재 금리를 장기간 고정하려는 소비자가 증가한 것으로 은행권은 보고 있다. 오경석 신한은행 신한PWM 태평로센터 팀장은 “안정적으로 금리를 유지하고 싶은 고객을 중심으로 3년 이상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예금금리 하락이 우려되거나 금리 변동성에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게 번거롭다면 장기 예금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여전히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보다 소폭 높은 편이어서 가입에 앞서 금리를 따져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예금금리 하락세 이어질 듯

은행권 예금금리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우리은행 ‘우리 WON 플러스 예금’ 1년 만기 금리는 연 4.60%로 지난달 13일 고점(연 5.18%)보다 0.58%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 ‘KB 스타 정기예금’ 금리도 연 4.96%에서 연 4.65%로 0.31%포인트 하락했다. 하나은행(하나의 정기예금)과 신한은행(쏠편한 정기예금)의 대표 정기예금 금리도 0.3%포인트가량 내렸다.

은행권은 예금금리 하락 원인으로 은행채 재발행을 꼽았다. 은행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정상화하면 예·적금 등 수신상품으로 고객 자금을 끌어올 유인이 줄어 고객에게 주는 금리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은 “은행채 재발행에 이어 예금금리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도 불경기로 인해 떨어지고 있어 예금금리가 오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달 10일 연 5.104%까지 올랐으나 이달 23일엔 연 4.421%까지 내려갔다.

금융 당국의 수신금리 인상 자제 권고도 금리 하락 배경으로 꼽힌다. 당국은 지난달 은행들의 수신금리 경쟁으로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 쏠리자 예금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은행권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된 후에도 인상분을 예금금리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