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다룰' 때와 거대 야당을 '상대'할 때
“소수여당은 너무 힘들다. 빨리 다수여당하고 싶다.”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타결한 지난 22일 저녁, 기자들과 만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고 1주일간 추가 협상을 벌였음에도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폭 등 현안에서 야당의 추가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묻어났다.

이날 협상 타결 자리에 함께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발표 시간 내내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날 대통령실은 “야당의 힘에 밀려 민생예산이 퇴색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는 화물연대로부터 사실상 항복선언을 받아낸 지난 9일과 대비된다. 정부는 16일간에 걸친 파업 기간에 원칙론을 고수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결국 화물연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투표를 통해 현장 복귀를 결정했다.

정치권에서는 화물연대에 대한 승리가 예산안 협상에선 윤석열 정부에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169석, 국민의힘 115석의 숫자에서 알 수 있듯 열세가 확연한데도 협상 전략 없이 원칙론만 고수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달까지 아무 얘기가 없던 법인세 인하를 정부가 강하게 주장하며 전체 예산안 협상을 몇 번씩 틀었다”며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면 최소한 11월부터 여론전을 했어야 하는데 의아하다”고 말했다.

100억원까지 상향하려다 원안(10억원) 유지로 결론 난 금융투자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놓고 여당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보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지난 10년간 계속 낮춰온 기준을 별안간 10배로 높이자고 하면서 기재부는 제대로 된 논리조차 제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화물연대를 다루던 방식으로 거대 야당을 상대하려다 보니 필요한 준비를 하지 못했고, 협상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과 노동, 교육개혁 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그 개혁 작업은 화물연대 파업 대응보다는 이번 예산안 협상과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 분야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 분야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버티고 있다. 더 내거나, 덜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개혁은 특정 이익단체를 넘어 국민 상당수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이들 영역의 개혁은 정부가 단순히 당위를 설파하고 원칙론만 이야기한다고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물연대에 대한 승리는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예산안 협상 실패를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