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법안 발의했으나 석 달째 논의 시작도 못 해
예산·세제 샅바싸움에 후순위로 밀려
재정준칙 연내 도입 무산…내년 국가채무, GDP 절반 넘는다
나라 살림의 건전성을 규율할 재정준칙의 연내 도입이 무산됐다.

예산 편성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0%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지난 9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여야가 내년 예산과 세제 개편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인 탓에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26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지난 9월 20일 대표 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이달 1일에야 상임위원회인 기재위 안건으로 상정돼 경제재정소위원회에 회부됐고, 현재까지 소위원회 단계에서의 논의도 시작되지 못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담은 정부·여당 안이다.

정기국회 내 입법을 완료해 2024년 예산안부터 곧바로 적용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으나 연내 법제화가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내년 임시 국회에서 논의하는 일정이 가장 빠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정준칙 연내 도입 무산…내년 국가채무, GDP 절반 넘는다
재정준칙은 나라 살림의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만 도입 경험이 없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보편적이다.

문재인 정부도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했으나 국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재정준칙은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0% 이내로 관리하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할 때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0% 이내로 조이는 것이 골자다.

이는 직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1.0]보다 강력한 수준이다.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도 기존 안인 시행령보다 격상된 법률(국가재정법)에 담기로 했다.

정부는 재정준칙이 도입된 것으로 가정하고 준칙에 맞게 내년 예산을 편성했지만, 앞으로도 일관성 있게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려면 준칙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서 확정된 2023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2천억원, GDP 대비 적자 비율은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는 우리 경제가 올해 2.6%, 내년 2.5% 성장할 것이란 전망에 기초한 것이어서 실제 GDP 대비 적자 비율은 이보다 소폭 높을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경제 성장률 전망을 올해 2.5%, 내년 1.6%로 하향했다.

내년 국가채무는 1천134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새로운 경제 전망을 적용하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4%로 절반을 넘는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 도입 방안이 건전성을 확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 기재위 김일권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안은 국가재정법에 따른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건을 충족하면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2013년부터 2022년 사이 10년간 2014년을 빼고는 매해 추경이 편성됐다"며 "추경 편성 시 재정준칙을 배제하면 재정준칙 도입 의미가 없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