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상현실(VR) 헤드셋 판매량이 꺾이면서 아직 초기 단계인 메타버스 산업이 암초를 만났다. 시장의 관심은 애플이 VR 혹은 AR(증강현실) 기기를 언제 내놓고 이 시장을 견인할 수 있을지에 맞춰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NPD그룹에 따르면 올해 미국 VR 헤드셋 판매는 12월 초까지 누적 11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분석업체인 CCS인사이트에 따르면 VR 헤드셋과 AR 기기의 전세계 출하량은 올해 960만대로 전년 대비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판매 부진은 빠른 성장을 보여줬던 지난해와 상반된다. NPD에 의하면 미국 VR 헤드셋 매출은 2020년 약 5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두 배로 늘었다. 벤 아놀드 NPD 소비가전부문 애널리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 5와 같은 게임 콘솔의 공급이 부족했던 지난해 VR 헤드셋은 각종 프로모션으로 판매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메타 퀘스트2를 착용하고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
메타 퀘스트2를 착용하고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올 해는 성장세가 꺾였고 그 결과 메타버스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기업들은 VR 기기의 판매 부진에 고전하고 있다. VR 헤드셋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메타 퀘스트2는 출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에서 매력을 잃었다. 메타는 지난 10월 신제품 '퀘스트 프로'를 출시했지만 퀘스트 2보다 1100달러 더 비쌌다. 개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수요가 기업에 국한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타는 기존 모델 퀘스트2의 가격을 100달러 올리면서 판매 부진에 일조했다.

판매 부진은 내년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CCS인사이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때문에 내년에도 VR 헤드셋 판매가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레오 게비 CCS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소비자의 예산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VR 헤드셋과 같은 비필수 제품의 구매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같은 시장 상황을 반전시킬 기대주는 애플이다. 애플은 내년에 AR 기능을 갖춘 헤드셋을 출시하기 위해 개발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비 애널리스트는 "VR 시장을 하루밤 사이에 변화시킬 회사가 있다면 애플"이라며 "애플이 헤드셋을 출시한다면 성능이 매우 뛰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에릭 어브루제스 ABI리서치 책임연구원은 "애플은 기업용 AR 헤드셋을 성공적으로 출시할 수 있다"며 "이후엔 개발자들을 메타버스 커뮤니티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수천달러에 달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첫해엔 500만개도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