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어제 보도자료를 내고 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에 제동을 걸었다. 구 대표를 차기 대표 후보로 확정한다는 KT 발표가 나온 지 3시간 만이다. 하루 전엔 서원주 신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취임 기자간담회를 통해 KT나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구조가 분산된 기업 CEO(최고경영자)의 ‘셀프 연임’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지난 8일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책임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발언은 예고이자 경고였던 셈이다. 국민연금이 작정하고 이들 기업의 CEO를 교체하려고 한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김 이사장 지적대로 “소유분산 기업의 회장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고착화하려는 시도”는 논란거리다. 그렇다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 지분율(KT 10.7%, 포스코홀딩스 8.5%)만큼 의결권 행사를 통해 의견을 개진할 일이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공개 개입하고, 현 대표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반대’ 입장문을 냈다. 이사회를 압박하고 다른 주주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 KT와 포스코 CEO는 항상 구설에 휘말렸다.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정권 교체 때마다 회장이 바뀌고, KT 대표 중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채운 사람은 황창규 전 회장이 유일하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로 민간 기업을 흔들어 연금 사회주의 우려를 자초했다. 하지만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율’을 핵심 정책 기조로 표방한 윤석열 정부 아닌가. 그것도 통신사 주가가 동반 하락한 와중에 유일하게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CEO를 낙마시키려 한다는 논란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

이번 기회에 보편타당한 국민연금 의결권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주인인 국민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 없이 의결권을 휘두르는 것은 자의적이거나 외부 입김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섀도 보팅’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주주의 찬반 비율대로 지분을 배분하는 중립적 행사 방식이다. 국민연금과 성격이 비슷한 일본 공적연금 GPIF처럼 위험이 작은 국채 등 채권투자를 제외한 모든 주식을 자격 있는 민간 운용사에 위탁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