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좀처럼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온화환 겨울 날씨와 유럽연합(EU)의 안전망 구축이 성과를 거두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29일(현지시간) 런던ICE거래소에서 유럽 천연가스 기준물인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1월물)의 MWh당 가격은 전일보다 3% 오른 83.8유로를 기록했다. 80유로대로 떨어졌던 지난 27일보다는 높아졌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 2월 23일(88.359유로)보다는 낮은 가격이다.

지난 8월 말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 가격이 345유로까지 치솟았던 것을 고려하면 가격 하락세가 뚜렷하다. 당시 러시아가 EU의 제재에 대한 맞불 조치로 천연가스 수출을 무기화한 가운데 여름철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격 급등은 유럽의 생활비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 되기도 했다.
29일(현지시간) 런던ICE거래소에서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1월물)의 MWh당 가격 추이. 자료=런던ICE거래소
29일(현지시간) 런던ICE거래소에서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1월물)의 MWh당 가격 추이. 자료=런던ICE거래소
올 겨울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북서부 유럽에서 계절에 맞지 않는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난방 수요가 전년 동기보다 줄었다. 온화한 날씨에 지난달 골드만삭스는 “각국이 공급 문제에서 일시적인 우위를 차지했다”며 “향후 몇 달 간 유럽 가스 가격이 급락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가스인프라스트럭쳐유럽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6일 EU의 가스 저장량은 용량 대비 83.2%수준이다. 최근 5개년 동기 평균치보다 높다.

올 연말 천연가스 가격의 하락세는 유럽이 가스 공급원을 다각화한 결과로도 풀이된다. 유럽은 미국에서 LNG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재빠르게 관련 시설 확충에 나섰다. 독일은 국내 최초의 부유식 LNG 수입 터미널과 이 터미널을 잇는 길이 26km 파이프라인을 지난 17일 개통했다. 네덜란드는 지난 9월 에임스하픈 항구에서 부유식 LNG 수입·저장 터미널 2곳의 가동을 시작했다.


유럽 최대 천연가스 공급국인 노르웨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가스 생산량을 8% 늘렸다.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는 “수요 측면에서 소비자와 기업들이 가스·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며 “일부 발전량이 천연가스에서 석탄으로 전력 공급원을 바꾼 점도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내년에도 천연가스 가격은 당분간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EU가 공급·수요 측면에서 대비책을 확보해 놓아서다. EU는 가스 대란을 막기 위해 오는 3월까지 가스 소비를 자발적으로 15% 줄이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공급난이 발생하는 경우엔 강제 배급제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EU는 지난 19일 TTF 가스 선물 가격이 180유로를 연속 3일 넘으면 거래를 중단하는 가격 상한제에도 합의했다. 이 상한제 조치는 내년 2월 15일부터 시행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