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대우조선, 하청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다만 하청이 원청을 상대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교섭이 결렬돼도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는 판단도 함께 나왔다.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28일 대우조선해양 거제 조선소 점거 파업을 주도했던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하청 지회)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주식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사건에서 이 같은 판정을 내렸다.

대우조선 사내협력회사(하청) 소속 근로자로 구성된 하청 지회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①성과급(물량팀 포함 모든 노동자 지급 등) ②학자금(일당제 노동자도 포함 등) ③노조 활동 보장(하청노조 사무실 제공 등) ④노동안전(하청노조의 원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 재해 발생 시 하청노조의 사고조사 참여 등) ⑤취업 방해 금지(블랙리스트 부존재 확약 등) 등 5개 의제 교섭을 요구한 바 있다.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 상대는 하청업체라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거부하자,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낸 것이다. 초심을 맡은 경남지노위(경남2022부노14)는 "원청이 하청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중노위는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다면서 초심을 취소했다. 즉 하청 노조 근로자들의 교섭 요구에 대해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나서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판정이다.

중노위는 "향후 하청노조가 ‘노동안전 등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원청 사업주가 하청 사업주와 함께 하청 노조를 상대로 성실히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노위는 "하청 근로자와 원청 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이상 하청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하는 '단체협약 체결권' 및 '단체행동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도 판정했다. 교섭 끝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결렬이 되더라도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어 "금번 판정은 원청(대우조선해양 주식회사)이 하청 '노사'와 성실하게 협의하라는 의미이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중요문제인 임금 근로조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원청 노사의 사회적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교섭 의무'를 인정했는데 이와 관련해 쟁의행위 등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벌써부터 공박이 펼쳐졌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상세한 내용은 판정문이 공개된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노위는 판정서를 통상 30일 이내에 작성해 노사 당사자에게 송부하는 게 관행이다. 한 노동법 교수는 "법리가 복잡하고 사회적 파급력이 적지 않은 사례이므로 평소보다 판정문이 나오는 시기가 훨씬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중노위는 지난 3월 24일에도 현대제철이 하청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사건에서 하청노조가 요구한 교섭의제 가운데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대해서는 원청이 사내하청과 함께 교섭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중앙2021부노268 판정).

이에 대해 중노위 관계자는 "현대제철 사안처럼 의제별로 부노를 판단한 건은 아니며, 전체적인 사실관계에 비춰봤을때 교섭의무가 인정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용문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대제철 판정에서는 안전에 대해 교섭의무를 부과하는 정도였는데, 이번 판정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체적인 교섭의무를 인정하면서 협약 체결권과 단체행동권을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한단계 더 나아간 판정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현대중공업, 행정법원에서 선고를 앞둔 CJ대한통운 사건 등 동종 쟁점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