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사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사진=각 사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사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사진=각 사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반도체 업계 토끼띠 최고경영자(CEO)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반도체 양대 산맥을 이끄는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사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반도체 시장은 올해도 침체기를 지속할 전망이다. 두 수장이 영민하고 민첩한 토끼띠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반도체 혹한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경계현 사장과 박정호 부회장은 1963년생 토끼띠다. 반도체 업계 최전선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 성장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올해 반도체 업황은 곡소리가 났던 지난해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 30년을 넘게 근무한 경계현 사장도,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이자 투자전략가인 박정호 부회장에게도 쉽지 않은 '준전시' 상황이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중고에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지속해서 얼어붙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전례 없는 수요 절벽에 재고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57조3198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38.5% 늘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재고자산은 14조6649억원으로 64.4% 급증했다.

실적은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실적의 대부분을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 적자 전환한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 예상 4분기 영업손실액은 1조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가 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2012년 3분기 이후 약 10년 만이다.

삼성전자도 올해 상반기 반도체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하이투자증권은 삼성전자 DS부문의 올 1분기 영업손실 전망치를 280억원으로 예상했다. 대신증권도 영업손실 695억원을 추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영업적자를 기록한다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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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두 회사의 자구책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낸드 플래시 권위자로 불리는 경계현 사장은 이번에도 '기술 초격차'를 내세웠다. 인위적 감산 대신 투자를 지속해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벌리고, 업황이 회복될 때 투자 효과를 톡톡히 누리겠다는 전략이다.

경 사장은 지난해 9월 "최근 반도체 사이클이 짧아지면서 시장수요에 의존하는 투자보다는 꾸준한 투자가 더 맞는 방향이 됐다"며 "일관되게 투자를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감산 카드를 꺼냈다.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의 50% 이상 축소할 방침이다. 공급과잉에 대비해 신규 공장과 설비투자를 줄이기로 했다. 생산 축소는 수익성이 낮은 제품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향후 수요 성장을 주도하게 될 DDR5, LPDDR5 등 신제품 양산을 위한 필수 투자는 지속할 계획이다.

박 부회장은 반도체 위기 극복에 주력한다. 작년 연말 인사에서 SK스퀘어 대표이사 겸직을 내려놓고 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직만 맡은 것도 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경기 침체기에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다운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위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메모리 업황은 올 하반기에나 반등할 것으로 점쳐진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SK하이닉스 뉴스룸에 실린 인터뷰에서 내년 하반기가 반등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기업들이 현 상황을 인식하고 공급을 조절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