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는 '담배의 테슬라'로 거듭날까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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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주가가 ‘퀀텀 점프’를 하려면 길은 딱 두 가지다. ‘스모크 프리(smoke-free)’와 수출이다. 내수에 국한된 ‘죄악주’로는 박스권 주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요건은 서로 연결돼 있다. 전자 담배로도 불리는 찌는 방식의 HNB든, 씹는담배든 스모크 프리 시장에서 글로벌 플에이어가 돼야 해외로 시장을 확장할 수 있어서다. KT&G는 현재 담배업계의 테슬라가 될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도 전 세계 담배 기업들은 좀 더 실제 연초 느낌이 나면서도 유해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HNB를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HNB 시장 규모는 2025년 844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1년의 4배다. 중요한 것은 아직 시장을 평정한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왕좌의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KT&G의 HNB 브랜드인 ‘릴’은 충분히 ‘K슬라(KT&G+테슬라)’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찌는 방식의 담배엔 연기와 냄새가 없어 실제 같은 ‘타격감’이 적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KT&G는 마치 연기 같은 수증기가 나오도록 제품을 업그레이드했다. 필립모리스조차 따라오지 못한 상품 개발력이다.
국내 HNB 침투율은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16.7%다. 이 시장에서 릴은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를 제치고 단연 1위다. HNB의 원조를 따돌릴 정도로 제품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엔 ‘릴 에이블’이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놨다. KT&G만의 스마트 인공지능(AI) 기술을 더한 제품이다.
KT&G의 지난해 3분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KT&G는 2020년 1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날과 차세대 담배 제품의 해외 공급·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8월 러시아에 최초 진출한 이후 일본, 우크라이나, 폴란드, 카자흐스탄, 체코, 그리스 등 총 31개국(지난해 말 기준)에 진출했다.
언뜻 해외 영토를 상당히 개척한 듯 보이지만, 필립모리스의 영업망과 마케팅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매출 대비 이익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T&G는 “해외에 영업망을 깔기 위해선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투여돼야 한다”며 “필립모리스가 갖고 있는 해외 각국의 영업망을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다”고 설명했다. KT&G는 필립모리스로부터 일종의 로열티 명목으로 제품 판매가의 일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립모리스가 로열티로 얼마를 버는지는 알 수 없다. 감사보고서 어디에도 릴의 해외 판매 수량, 매출, 이익 등 실적에 관한 숫자는 단 하나도 기재돼 있지 않다. 워낙 미미한 숫자여서 공개를 꺼리는 것일 수도 있고, 전략적 제휴 상대인 필립모리스가 판매 공개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어쨌든 주주들은 KT&G 차세대 담배의 해외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KT&G 관계자는 “릴이 나가 있는 31개국은 필립모리스 차세대 담배 매출의 80% 가량이 나오는 핵심 국가들”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내연 기관 차량은 독자 영업망을 개척해 열심히 수출하면서 정작 전기차는 테슬라의 영업망에 기대 판매하고 있는 셈이다. 필립모리스의 최근 행보는 이 같은 우려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씹는 방식의 차세대 담배를 개발한 스웨디시매치라는 스웨덴의 담배 회사를 160억달러(약 23조원)에 인수한 것. 필립모리스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스모크 프리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뚜렷한 목표 없는 ‘적과의 동침’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자칫 차세대 담배 시장에서 ‘2등 브랜드’로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가는 꿈을 먹고 자란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명확지 않다면 우상향 주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BAT조차 차세대 담배 시장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수익성 위주로 내실을 다져가며 릴의 글로벌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해외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것이 KT&G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본격화된 차세대 담배 시장 ‘왕좌의 게임’
HNB는 전기차 혁명에 비견할만한 발명품이다. 1980년대 숱한 소송에서 패하며 필립모리스 등 담배업계는 몸에 덜 해로운, 연기 나지 않는 담배를 개발하는데 수조 원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아이코스’, ‘릴’ 등의 전자 담배다.지금도 전 세계 담배 기업들은 좀 더 실제 연초 느낌이 나면서도 유해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HNB를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HNB 시장 규모는 2025년 844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1년의 4배다. 중요한 것은 아직 시장을 평정한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왕좌의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KT&G의 HNB 브랜드인 ‘릴’은 충분히 ‘K슬라(KT&G+테슬라)’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찌는 방식의 담배엔 연기와 냄새가 없어 실제 같은 ‘타격감’이 적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KT&G는 마치 연기 같은 수증기가 나오도록 제품을 업그레이드했다. 필립모리스조차 따라오지 못한 상품 개발력이다.
국내 HNB 침투율은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16.7%다. 이 시장에서 릴은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를 제치고 단연 1위다. HNB의 원조를 따돌릴 정도로 제품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엔 ‘릴 에이블’이라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놨다. KT&G만의 스마트 인공지능(AI) 기술을 더한 제품이다.
필립모리스와 제휴해 해외 수출하는 ‘릴’
국내 차세대 담배 시장에서 경쟁력을 바탕으로 KT&G는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6년 4명의 팀원으로 출발한 차세대 프로덕트팀은 현재 100여 명의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했다. KT&G 관계자는 “필립모리스, BAT 등 글로벌 담배 산업의 독과점 업체들로부터 안방 시장을 방어하고 있는 건 거의 한국 뿐”이라며 “해외에서도 릴이 아이코스와 함께 인지도 면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고 설명했다.KT&G의 지난해 3분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KT&G는 2020년 1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날과 차세대 담배 제품의 해외 공급·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8월 러시아에 최초 진출한 이후 일본, 우크라이나, 폴란드, 카자흐스탄, 체코, 그리스 등 총 31개국(지난해 말 기준)에 진출했다.
언뜻 해외 영토를 상당히 개척한 듯 보이지만, 필립모리스의 영업망과 마케팅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매출 대비 이익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T&G는 “해외에 영업망을 깔기 위해선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투여돼야 한다”며 “필립모리스가 갖고 있는 해외 각국의 영업망을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다”고 설명했다. KT&G는 필립모리스로부터 일종의 로열티 명목으로 제품 판매가의 일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립모리스가 로열티로 얼마를 버는지는 알 수 없다. 감사보고서 어디에도 릴의 해외 판매 수량, 매출, 이익 등 실적에 관한 숫자는 단 하나도 기재돼 있지 않다. 워낙 미미한 숫자여서 공개를 꺼리는 것일 수도 있고, 전략적 제휴 상대인 필립모리스가 판매 공개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어쨌든 주주들은 KT&G 차세대 담배의 해외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KT&G 관계자는 “릴이 나가 있는 31개국은 필립모리스 차세대 담배 매출의 80% 가량이 나오는 핵심 국가들”이라고 말했다.
“미래 전장에서 치열한 경쟁 벌여야”
KT&G는 일반 궐련담배의 수출에 대해선 공격적인 전략을 펴왔다. 올 3분기 감사보고서엔 “국내 궐련 시장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집중 공략하며 글로벌 궐련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기재돼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궐련 담배 수출국은 100개국을 돌파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담배 수출액은 7351억원으로 전체 담배 매출의 31%에 달했다.다시 한번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내연 기관 차량은 독자 영업망을 개척해 열심히 수출하면서 정작 전기차는 테슬라의 영업망에 기대 판매하고 있는 셈이다. 필립모리스의 최근 행보는 이 같은 우려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씹는 방식의 차세대 담배를 개발한 스웨디시매치라는 스웨덴의 담배 회사를 160억달러(약 23조원)에 인수한 것. 필립모리스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스모크 프리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다.
뚜렷한 목표 없는 ‘적과의 동침’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자칫 차세대 담배 시장에서 ‘2등 브랜드’로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가는 꿈을 먹고 자란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명확지 않다면 우상향 주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BAT조차 차세대 담배 시장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수익성 위주로 내실을 다져가며 릴의 글로벌 인지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해외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것이 KT&G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