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인정 못받자 가해자로 돌변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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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귀하께서 제기하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최종 불성립으로 의결되었음을 알립니다.”
HR부서에서 온 이메일이었습니다. 안내문 뒤에 딸랑 붙은, 철저하게도 기계적인 ‘따뜻한 관심과 격려’ 멘트와 함께였습니다. A는 이메일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삭제’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불성립 판단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증거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던 은밀한 괴롭힘이 있었다는 신고, 본부 내에 ‘내 편’이 된 참고인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확인 불가’라는 말 그대로 그저 무시되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본부 총원이 무려 18명이나 되는데도 말이죠.
A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A가 1년 후배인 B를 신고했다는 사실은 본부 전체는 물론 전 회사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있는 상황입니다. A가 나가든, B가 나가든 둘 중 하나의 결론 밖에는 없다고, A는 생각했습니다.
‘B를 집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B를 어떻게든 난관에 봉착시켜 자기 앞가림도 못하게 되는 꼴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훼손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당이고, 최종 불성립으로 의결되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질 것이고, A는 그런 ‘나쁜’ 소문이 퍼지기 전에 자신이 여론을 장악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괴롭힘이 있다는 증거가 명백하게 있는데도 회사에서 B가 핵심인력이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사건을 막았으며, B가 회사와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하기로 하고, A는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A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신고인은 B였으며, 신고내용은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내용의 루머 유포’이었습니다. 고충상담원이 살짝 흘리는 말에 따르면, “루머를 믿는 사람은 없는데, 기록이 다 남아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불행 암시와 함께였습니다.
A는 아차 싶었습니다. 메신저, 통화녹음, 1:1 대화 녹취 등은 어떤 경로로도 기록은 남을 수 있다는 것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A가 접근한 사람들 중 누가 ‘기록’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A는 필시 C 아니면 D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둘이 가장 협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A는 억울했습니다. 바로 자신이 직전 사건의 신고인이었고, 불성립 의결이 되었을지언정 그것은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에 해당이 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되지 않더라도 고충은 남아 있을 수 있다’라고 교육까지 했습니다. A는 그저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고충’을 토로했을 뿐이라며 항변하였고, 직장 내 괴롭힘 성립이 될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회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A에게 제기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성립’으로 의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A의 현명하지 못한 처사로 인해 ‘물증’이 남은 것으로 보이고, A는 B의 1년 선배이며, 내용으로 보더라도 ‘증거가 있었다’라는 사실 왜곡적 발언이 B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사실 또는 허위사실과 버무려져 B에게 피해를 끼칠 법한 상황이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동기나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A가 B에 대해 앙심을 품고 악의로 행동했다고 추정될 여지도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보아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동이라고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A가 비록 B보다 1년 선배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잘 살펴보면 △B가 실제 핵심인력으로서 조직 내에 강한 영향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1년 정도의 선후배 관계만으로 확실한 우열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전 사건에서는 A에게 ‘내 편’이 된 참고인이 전혀 없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B에게 도움이 되는 물증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이는 등 조직 내 인간관계 측면에서도 특별히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볼 때 ‘우위성’ 요건에서 결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소문을 믿은 사람이 없다거나 행위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의 악화’라는 결과발생 요건에서도 결격될 미약한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따라서 회사는 추후 법원, 노동위원회나 노동청 등에서의 소명 절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상기와 같은 사항을 섬세히 살펴 조사해야만 철저한 사건 처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한편, A가 B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낸 구조적인 원인을 글 속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전 회사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있는 상황’ 입니다. 현실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경우 완벽하게 비밀유지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은 사건이 접수되기 전 이미 괴롭힘 사실 또는 행위자에 대한 평판 등이 소문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회사 내에 ‘고요해지는 기류’가 돌기 시작하면 쉽게 소문이 돌게 됩니다.
따라서 회사는 보다 섬세한 조사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눈을 피할 수 있는 조사 시간 및 장소, 조사대상자의 ‘자리비움’에 대한 합리적인 다른 명분, 조사 전 비밀유지에 대한 의도적 재교육 개시 등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회사는 재발방지대책 수립 시에도 비밀유지와 관련된 정책에 결점이 있는지를 살피고, 해당 본부 뿐만 아니라 전 조직에 적용될 만한 개선된 정책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A가 ‘남아 있는 고충을 토로했을 뿐’이라 주장한 점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시 ‘주변 동료 직원에게 괴롭힘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여도 되는지?’, ‘고충을 토로해도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등의 주제를 간략하게라도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곽영준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책임노무사
HR부서에서 온 이메일이었습니다. 안내문 뒤에 딸랑 붙은, 철저하게도 기계적인 ‘따뜻한 관심과 격려’ 멘트와 함께였습니다. A는 이메일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삭제’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불성립 판단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증거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던 은밀한 괴롭힘이 있었다는 신고, 본부 내에 ‘내 편’이 된 참고인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확인 불가’라는 말 그대로 그저 무시되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본부 총원이 무려 18명이나 되는데도 말이죠.
A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A가 1년 후배인 B를 신고했다는 사실은 본부 전체는 물론 전 회사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있는 상황입니다. A가 나가든, B가 나가든 둘 중 하나의 결론 밖에는 없다고, A는 생각했습니다.
‘B를 집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B를 어떻게든 난관에 봉착시켜 자기 앞가림도 못하게 되는 꼴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훼손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당이고, 최종 불성립으로 의결되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질 것이고, A는 그런 ‘나쁜’ 소문이 퍼지기 전에 자신이 여론을 장악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괴롭힘이 있다는 증거가 명백하게 있는데도 회사에서 B가 핵심인력이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사건을 막았으며, B가 회사와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조성하기로 하고, A는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A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신고인은 B였으며, 신고내용은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내용의 루머 유포’이었습니다. 고충상담원이 살짝 흘리는 말에 따르면, “루머를 믿는 사람은 없는데, 기록이 다 남아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불행 암시와 함께였습니다.
A는 아차 싶었습니다. 메신저, 통화녹음, 1:1 대화 녹취 등은 어떤 경로로도 기록은 남을 수 있다는 것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A가 접근한 사람들 중 누가 ‘기록’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A는 필시 C 아니면 D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둘이 가장 협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A는 억울했습니다. 바로 자신이 직전 사건의 신고인이었고, 불성립 의결이 되었을지언정 그것은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의 요건에 해당이 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되지 않더라도 고충은 남아 있을 수 있다’라고 교육까지 했습니다. A는 그저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고충’을 토로했을 뿐이라며 항변하였고, 직장 내 괴롭힘 성립이 될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회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A에게 제기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성립’으로 의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A의 현명하지 못한 처사로 인해 ‘물증’이 남은 것으로 보이고, A는 B의 1년 선배이며, 내용으로 보더라도 ‘증거가 있었다’라는 사실 왜곡적 발언이 B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사실 또는 허위사실과 버무려져 B에게 피해를 끼칠 법한 상황이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동기나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A가 B에 대해 앙심을 품고 악의로 행동했다고 추정될 여지도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보아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동이라고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A가 비록 B보다 1년 선배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잘 살펴보면 △B가 실제 핵심인력으로서 조직 내에 강한 영향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1년 정도의 선후배 관계만으로 확실한 우열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전 사건에서는 A에게 ‘내 편’이 된 참고인이 전혀 없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B에게 도움이 되는 물증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이는 등 조직 내 인간관계 측면에서도 특별히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볼 때 ‘우위성’ 요건에서 결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소문을 믿은 사람이 없다거나 행위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의 악화’라는 결과발생 요건에서도 결격될 미약한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따라서 회사는 추후 법원, 노동위원회나 노동청 등에서의 소명 절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상기와 같은 사항을 섬세히 살펴 조사해야만 철저한 사건 처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한편, A가 B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낸 구조적인 원인을 글 속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전 회사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있는 상황’ 입니다. 현실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경우 완벽하게 비밀유지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은 사건이 접수되기 전 이미 괴롭힘 사실 또는 행위자에 대한 평판 등이 소문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회사 내에 ‘고요해지는 기류’가 돌기 시작하면 쉽게 소문이 돌게 됩니다.
따라서 회사는 보다 섬세한 조사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눈을 피할 수 있는 조사 시간 및 장소, 조사대상자의 ‘자리비움’에 대한 합리적인 다른 명분, 조사 전 비밀유지에 대한 의도적 재교육 개시 등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회사는 재발방지대책 수립 시에도 비밀유지와 관련된 정책에 결점이 있는지를 살피고, 해당 본부 뿐만 아니라 전 조직에 적용될 만한 개선된 정책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A가 ‘남아 있는 고충을 토로했을 뿐’이라 주장한 점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시 ‘주변 동료 직원에게 괴롭힘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여도 되는지?’, ‘고충을 토로해도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등의 주제를 간략하게라도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곽영준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책임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