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세계경제 3대 격랑' 극복하는 법
올해 세계 경제는 세 개의 거센 파도를 넘어야 한다. 우선 경기 침체의 늪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가 올해 2.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3.2% 성장만도 못하고, 지난 10년간 2020년 팬데믹 원년을 빼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세계적 고금리 추세, 그리고 인플레이션 같은 악재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세계는 중국 경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과감한 팽창적 재정정책에 힘입은 견실한 중국 경제가 상당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베이징이 봉쇄를 풀고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앞으로 여행, 생산·소비 등이 활성화되면 베이징이 공언한 5% 성장으로 세계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서두른 봉쇄 해제로 인한 코로나 확산이 중국 경제에 혼란을 가져오고 세계 경제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다가오는 춘제에 그간 코로나 무풍지대였던 농촌지역으로 수억 명의 도시인구가 몰려간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중국 경제의 향방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되는 대혼란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습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올해는 그간의 세계무역기구(WTO)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고, 인도·태평양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출범하는 원년이 될 것 같다. 작년 12월 WTO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중국산 철강 등에 대한 관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 한참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몰두하는 워싱턴 입장에서 보면 WTO는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14개국 대표가 모여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의 큰 그림을 그렸다. 핵심은 탈중국을 위한 공급망 개편과 무역 원활화 등인데, 미국은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쯤 정식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WTO 같은 묻지마(!) 자유무역과 세계화 시대는 가고, 대신 인권,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연대 같은 가치 지향의 국제협력 체제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

마지막은 미·중 패권 전쟁의 전방위적 확전(擴戰)이다. 요즘 워싱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자유무역을 주창하던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 대신 ‘차이나 후려치기’를 진두지휘하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난가을 미 상무부는 이번 세기 들어 가장 강력한 대중(對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의 ‘반도체 국지전’을 전면전으로 확전하고 중국의 기술 굴기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화웨이 같은 특정 기업 겨냥(targeting)에서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인 SMIC, 양쯔메모리(YMTC) 등도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등에 대한 수출 통제도 했으니 두 패권국의 국운을 건 기술 전쟁이 날로 극으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정부·기업이 한 팀이 돼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다짐했다. 지난 반세기 우리 경제를 되돌아보면 항상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았다. 그 대표적 예가 미·일 반도체 전쟁 격랑을 타고 도약한 K반도체, 가깝게는 유럽 에너지 위기로 폭등한 LNG선 수주를 싹쓸이한 K조선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선 우선 지난 정권과 같이 갈팡질팡하지 말고,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선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은 평가받을 만하다.

다음으로 K산업 덕분에 높아진 대외협상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최근 미 재무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한발 물러서 한국산 전기차도 리스·렌터카로 판매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우리 민·관이 힘을 모아 뛴 노력의 결실이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한·중 관계’를 내세운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으로 중국과도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한·중 관계가 과거 사드 보복 때와는 다르다. 요즘 베이징은 반도체가 절박하다. 대만의 TSMC가 야속하게 돌아섰으니, 그나마 기댈 곳이 K반도체다. 다행히 미국의 중국 견제가 하이테크 반도체 같은 특정 분야에 한정돼 있기에 두 나라가 아직 협력할 분야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