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은 신년 음악회 레퍼토리 '파격 변신'에도…앙코르만은 남겨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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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 마스터피스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오스트리아의 새해 전통
요한 슈트라우스 父子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앙코르곡 '무언의 약속'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오스트리아의 새해 전통
요한 슈트라우스 父子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앙코르곡 '무언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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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 12월 31일 시작해 1941년 1월 1일부터 신년 음악회 명맥을 이어온 이 공연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새해 인사를 마치는 것은 무언(無言)의 약속으로 통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작품은 빈 왈츠 자체를 뜻할 정도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슈트라우스 1세가 즐겁고 리듬감 넘치는 음악으로 농민의 춤에 뿌리를 둔 왈츠의 대중화를 이뤄낸 인물이라면, 그의 아들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악 장르로 왈츠의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러나 단순히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 대한 애정만이 ‘라데츠키 행진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에 대한 오스트리아인의 오랜 지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피로 물든 황폐한 전쟁 속에서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절망을 맛봤던 오스트리아인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

취지는 좋았으나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남성 합창곡의 초연 반응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중에 그가 합창을 배제한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서 현재까지 주로 오케스트라 연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공허함, 절망 등 부정적 감정을 환기하고 쾌활한 분위기를 일으키고자 했던 이 곡은 현재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제2의 국가로 여겨진다.
이때 빈 왈츠 특유의 박자 표현에 집중한다면 현지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진가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세 박 중 첫 박을 짧게, 둘째 박을 조금 더 길게 연주해 마치 박자가 뒤로 쓰러지듯 들리도록 연주하는 것이 빈 왈츠의 고유 특징 중 하나다. 관악기가 스타카토(음 하나하나를 짧게 끊어서 연주)로 가벼운 분위기를 드리우는 제2 왈츠에선 하프의 편안하면서도 신비로운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제3 왈츠는 밝고 우아한 선율이 책임진다. 비교적 단순한 선율 진행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구간이다. 이후 강렬한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로 등장하는 제4 왈츠는 고풍스러운 선율 진행 중 이뤄지는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특징으로 한다.
마지막 제5 왈츠에서는 관악과 현악을 아우르는 경적과 같은 소리가 분위기 반전을 알린다. 3박의 왈츠 리듬이 가장 명확히 발현되는 구간으로 빠르게 상행하는 선율과 강한 셈여림 속 경쾌하고 화려한 음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후주에서는 호른의 주선율이 다시 등장하는데, 처연한 분위기에 모두가 방심하는 순간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전체 악기가 연주 속도를 순식간에 높이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관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화려하게 끝을 맺으면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박수 소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재치 있게 등장한다. 이 곡의 매력을 온전히 살리는 데에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이어서다.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무대에서 이례적으로 청중과 연주자가 하나가 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순간으로 여겨져서다. 2박자 계열의 단순한 리듬, 명료한 선율로 행진곡 특유의 경쾌함을 온전히 살려낸 이 작품에서는 곳곳에 등장하는 짧은앞꾸밈음(본래 음 앞에 다른 음을 아주 짧게 연주), 트릴(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 등 장식음에 귀를 기울이면 곡의 화려함과 흥겨움을 배로 느낄 수 있다.
김수현 문화부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