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펼쳐진 회계업계의 ‘감사인 수임 전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삼정회계법인의 승리, 안진회계법인의 선전’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은 삼성생명, 카카오 등의 감사인으로 선정되며 자존심을 세웠지만 2위 삼정회계법인의 맹렬한 추격을 받게 됐다.

삼일, 1위 지켰지만 아쉬움 남겨

삼정, 올 회계대전서 대약진…1위 삼일 맹추격
5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2019년 말 정부로부터 감사인 지정을 받은 기업들은 3년간의 지정 기간을 끝내고 올해부터 최대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한다. 당시 감사인을 지정받은 220개 기업 가운데 신규 직권지정 사유가 발생했거나 피합병으로 소멸된 기업 27곳을 제외한 193곳이 자유수임 대상으로 나왔다.

삼일회계법인은 삼성생명, KB금융지주, CJ㈜, CJ제일제당, 카카오, HMM, 태광산업, HL만도 등과의 감사 계약을 따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에서도 4대 회계법인 중 가장 많은 기업을 지정받으며 업계 1위 위상을 지켰다. 하지만 2019년 전까지 삼일이 감사를 맡았던 삼성전자 BNK금융지주 삼성카드 현대해상 등을 다른 회계법인에 빼앗겼다.

올해 DGB금융지주와 한진의 감사인 자리를 새로 꿰찼지만 무게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다.

반면 삼정회계법인은 대약진을 보였다. 2019년 지정 전까지 다른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았던 삼성전자, 현대백화점, 대한항공, 우리금융지주, 키움증권 등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회계업계에선 “삼일회계법인이 감사 품질 개선에 집중한 나머지 영업력이 다소 약해진 결과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삼일의 감사 품질은 4대 회계법인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꼽힌다. 최근 3년간 금융당국의 감사보고서 감리 결과에 따르면 삼일의 조치 건수는 2건으로 4대 회계법인 중 가장 적었다. 일각에선 “삼일의 깐깐한 감사가 오히려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해 수임 경쟁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감사 분야 1·2위 경쟁이 한층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삼일(6월 결산법인)과 삼정(3월 결산법인)의 2021회계연도 감사부문 매출은 각각 2861억원, 2147억원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삼정 감사부문 매출이 올해 삼일을 넘어설 가능성은 작지만 두 법인 간 매출 격차는 줄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삼성전기 따낸 안진

안진회계법인은 LG화학, 삼성전기, 현대해상, 삼성카드, 강원랜드의 감사인으로 선임됐다. 모두 2019년 전까지 다른 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받은 곳이다. 안진은 작년 초 LG에너지솔루션 수임에 이어 LG화학 감사인 자리까지 따내면서 LG그룹의 배터리 계열사를 차지하게 됐다. 2019년 홍종성 대표 취임 이후 ‘감사 품질 향상’을 법인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이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영회계법인은 GS건설, 롯데케미칼, BNK금융지주,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KCC 등과 감사 계약을 체결했다. 자유수임뿐 아니라 주기적 지정에서도 양호한 성과를 냈다. 현대자동차 등의 감사인으로 지정받으면서 실속을 챙겼다.

회계업계에서는 2019년부터 신외감법이 시행된 이후 회계법인과 기업 간 관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기업들이 지정제를 경험하면서 회계법인 간에 감사 품질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외부감사인 선임 권한이 감사위원회로 넘어가면서 과거와 같이 인맥에 의존한 영업 방식이 통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서형교/이동훈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