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시장통 밥집 누가 살렸나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전통시장을 찾는다. ‘어묵 먹방’은 필수 코스다. 좀 색다르게 한다면 ‘호떡 먹방’ 정도. 그렇게나 대선후보, 시장후보, 국회의원들이 시장을 찾아 음식을 먹고 상인의 손을 붙잡으며 지원을 약속해왔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전국에서 전통시장 116개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거래에 취약한 전통시장은 더 힘들어졌다.

그 안에서 삶을 일구던 식당 주인은 옆 점포가 하나둘 문을 닫아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다 최근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상인과 주변 직장인 대상으로 점심 한 시간 장사를 해왔지만, 이젠 저녁과 주말에도 2030세대와 가족 단위 손님들이 밥을 먹으러 온다.

신바람이 난 그는 일요일에도 문을 열자고 상인회에 요청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청년몰에서 김치찜을 파는 30대 식당 주인의 이야기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불러왔을까.

적을 동지로 만든 경동시장

경동시장은 6·25전쟁 후 청량리역 부근에 열차로 들어온 농산물이 집결되며 만들어졌다. 1960년 공식적으로 문을 연 이곳에선 60년 넘게 인삼과 약재 등이 거래돼 왔다.

깊은 역사를 가졌지만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더구나 경동시장이 있는 제기동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서울에서 가장 고령화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경동시장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케이디마켓과 상인회는 젊은 계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2018년 ‘전통시장의 적(敵)’이라 인식됐던 대형마트를 시장에 들이는 모험을 했다. 이마트 노브랜드 매장을 직접 유치한 것이다.

그다음엔 스타벅스의 문을 두드렸다. 스타벅스를 유치하는 건 쉽지 않았다. 오피스 밀집지역 등 좋은 입지에 매장을 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는 스타벅스가 경동시장 내 1층도 아닌 3층 인삼 상가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20년 넘게 버려진 폐극장이라니. 하지만 3년간 계속된 경동시장의 구애에 결국 스타벅스도 넘어갔다. 홍콩 본부와의 논의 끝에 지역사회와 이익을 공유하는 형태로 매장 개설을 결정했다.

규제는 혁신 이끌 수 없어

지난달 문을 연 스타벅스 ‘경동1960’ 매장은 순식간에 핫플레이스가 됐다. LG전자도 경험 공간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를 열어 힘을 보탰다. 경동1960의 하루 방문자는 1000명 이상, 누적 방문자는 보름여 만에 2만 명에 육박했다. 경동시장 내 청년몰 식당 매출은 1.5~2배 늘었다.

“젊은 사람들이 오니 활기가 느껴져. 언젠간 도라지, 더덕에도 관심을 갖겠지.” 건나물 상인은 당장 장사에 영향이 없더라도 유동인구가 증가한 자체로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는 전통시장을 살리려 무던히 노력했다. 보조금을 만들어 예산을 투입했다. 10년 넘게 대형마트 출점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키게 했다. 지난해엔 스타벅스, CJ올리브영 같은 직영 매장이 지역 상권에 마음대로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경동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정부 지원도, 마트 규제도 아니었다. 스스로 혁신하고자 하는 상인들의 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