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5일 클래식 음악계를 달군 최대 이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단원 채용’이었다. 겨우 9명을 뽑는다는 뉴스에 클래식 애호가의 이목이 쏠린 것은 이번 채용이 8년 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시향은 악장, 수석 등 주요 단원이 무더기로 퇴사해도 채용하지 않았다. 빈자리는 객원 연주자로 채웠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교향악단에 지난 8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황당 규정’에 채용길 막혀

이야기는 박현정 전 대표와 정명훈 전 음악감독이 공개적으로 다툰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난 여론에 박 대표에 이어 정 감독도 떠났지만, 서울시향은 후임 감독을 찾지 못했다. 무려 4년이나 그랬다. ‘선수’를 선발할 감독이 없으니 단원 채용은 무기한 연기됐다.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봉을 잡은 오스모 벤스케 전 감독이 2019년 취임하면서 단원을 뽑을 여건은 마련됐지만, 이번엔 정부의 ‘황당한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2017년 불거진 공공기관 채용 비리 대응책으로 행정안전부가 ‘지방 출자·출연기관 인사·조직지침’ 채용 규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 지침은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이 채용 시험을 치를 때 지원자와 동일 부서에서 근무한 사람은 심사위원을 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시향에도 이 지침이 적용되면서 벤스케 전 감독은 악장, 수석 채용 때 심사위원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통상 악장, 수석 자리를 공모하면 기존 단원도 응모하기 때문이다. 공연계 관계자는 “당시 벤스케 전 감독이 ‘단원을 뽑지 못하는 음악감독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게 공연계에 널리 퍼졌다”고 말했다.

신규 채용 지연은 연주력 저하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기준 서울시향 단원 수는 96명으로 정원(123명)에 크게 못 미친다. 핵심 보직인 악장 2명도 공석이다. 손발을 자주 맞출 수 없는 객원 단원으로 빈자리를 채우다 보니 “서울시향 소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온다.

‘땜질식 처방’으로 해결될까

음악감독을 단원 채용에서 배제하는 규정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들은 음악감독이 단원 선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주요 악단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감안해 서울시향이 행안부에 규정 완화를 요구했지만, 행안부는 지침을 바꾸는 대신 “서울시와 협의해서 결정하라”는 답만 내놨다. 이번 채용은 이런 과정을 거쳐 진행됐다.

공연계 관계자는 “행안부 지침 개정이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서울시와의 협의’란 편법으로 푼 셈”이라며 “공공기관 채용 비리와 같은 문제가 터질 경우 기존 지침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채용을 둘러싼 서울시향의 불확실성은 그대로인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시향은 이번에 제1 바이올린 악장, 비올라 부수석과 단원, 첼로 제1 수석과 부수석, 호른 제1 수석과 부수석, 호른 단원, 트럼펫 제1 수석 1명씩을 뽑는다.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야프 판 즈베던(현 뉴욕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이 오디션에 참여한다.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지금이라도 서울시향의 미래를 책임질 신규 단원을 채용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연령·국적·학력에 관계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단원을 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현/조동균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