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마키아벨리가 본 '피렌체 1000년 분열史'
“달랑 <군주론> 하나 읽고 마키아벨리를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왕십리까지 와서 서울을 봤다고 자랑하는 시골 양반의 허세와 같다.”

마키아벨리 전기를 쓴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인문학과 고전, 르네상스 예술을 연구해왔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과의 대담을 정리해 <초격차>를 쓴 저자로도 유명하다.

[책마을] 마키아벨리가 본 '피렌체 1000년 분열史'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김 교수는 정치학·처세술의 고전 <군주론>과 함께 <피렌체사>를 읽기를 권한다. 마키아벨리가 14년 일했던 피렌체 공화국 관직에서 막 쫓겨난 다음 쓴 게 <군주론>이라면, <피렌체사>는 그가 평생 쌓은 경험과 지식을 쏟아낸 필생의 역작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1526년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자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7세에게 바쳤고, 1년 뒤 사망했다. 김 교수는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의 마지막 장면까지 지켜본 다음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런 <피렌체사> 한국어 번역본이 처음 출간됐다. 소설가로도 활동하는 하인후 번역가가 한국어로 옮기고 김 교수가 감수했다. 피렌체는 오랜 기간 이탈리아의 상업과 예술 중심지였다. 그래서 피렌체사(史)가 곧 이탈리아사다. 고향 피렌체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집대성했다.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이탈리아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다. 그는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뉘는 4세기 후반부터 책 집필 당시 현재진행형이었던 이탈리아 전쟁(1494~1559년)까지 1000년 넘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 반도가 어떻게 찢기고 갈라졌는지 서술한다. 공화국 주창자인 그가 이 아픈 분열사를 꺼낸 이유는 명확하다. “계속 터지는 새로운 분열들이 피렌체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피렌체는 진실로 위대한 국가 반열에 올라섰을 것이다.”

읽다 보면 생소한 인명과 지명의 행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번역자의 친절한 각주가 정신줄을 붙잡아주는 동아줄 역할을 한다. 마키아벨리가 “로마 장군 가이우스 마리우스에 의해 킴브리족이 격퇴된 이후”라고만 써놓은 곳에 “(BC 101년 베르첼레 전투)”라고 달아두는 식이다. 마키아벨리가 카노사의 굴욕이 일어난 해를 1080년이라고 잘못 적은 걸 그대로 옮기면서도 각주를 통해 “실은 1077년”이라고 살포시 바로잡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서에 없는 지도와 미술 작품 등을 첨부했다.

‘왜 익숙하지도 않은 남의 나라 분열사까지 읽어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년 전 피렌체에서 일어난 사건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당파 싸움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에 휩싸이는 일은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삼국지>를 평역한 소설가 이문열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지금 우리 사회와 겹치고 역사의 반복에 침울해지지만, 그것이 귀감이든 반면교사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800쪽에 육박하는 벽돌책이 부담스럽다면 입문서 역할을 해줄 책도 있다. 김 교수가 작년 6월 출간한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다. 언뜻 피렌체 여행서쯤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쉽게 읽는 <피렌체사>’에 가깝다. 두 책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형제 사이다. 하 번역가가 당시 일면식도 없던 김 교수에게 ‘책을 어렵사리 번역했는데 출판사들이 원고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메일을 보내자 김 교수가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시리즈에 <피렌체사>를 녹여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를 썼다. 이 책에 힘입어 <피렌체사>가 정식 출간됐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