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부터 8일까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2023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ASSA)’를 앞두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묘한 설전이 오갔다. ASSA는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참석하는 경제학계 최대 행사다.

스태그플레이션 장기화 전망

전직 미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이날 총회에 앞서 "장기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머스 교수는 2021년부터 인플레이션을 예고한 석학으로 유명하다. 2021년 2월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기고문에 이어 물가상승률이 1%대 수준일 무렵부터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예견했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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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교수는 이미 수 차례 스태그플레이션을 예고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0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문을 내며 "지난 70년간 큰 폭의 물가를 잡으려 할 때마다 경기침체가 뒤따랐다"며 "경기 연착률을 위한 인플레이션과 침체 위험 관리를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머스 교수는 또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각종 지표가 둔화하고 있는데 대해 “중고차 등 공급망 대란으로 일시적으로 올랐던 가격이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이를 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착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업률이 매우 낮고 임금 상승률을 5%를 넘는다”며 지속적인 물가상승을 예견했다.

인플레이션은 경기 부양정책 탓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재정정책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조 바이든 정부가 내놓은 1조 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행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지금 같은 상황을 조성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사전 발표문을 통해 “재정정책은 극도로 정치적일 수 있어서 재정 준칙 등을 통해 제어하려 노력했지만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며 “현재 많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을 점점 더 거세게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전력으로 인해 친(親) 민주당 계열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서머스 교수도 WP 기고문을 통해 선별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광범위한 현금 살포 여력은 작지만, 특정 분야에는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바이든 정부가 시행했던 부양책을 겨냥한 발언이다.

서머스 교수는 “관세 인하, 에너지사업 심사 기간 단축, 의료비·학자금 부담 경감, 공공 조달 비용 절감 등이 필요하다”며 “자녀 세액공제 환급, 실업보험 강화 등 특정 분야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한 논쟁은 지난해 서머스 교수의 승리로 일단락된 바 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서머스와 2021년부터 인플레이션 전망을 두고 수차례 설전을 벌였다.

서머스 교수는 2021년 초 "경기 부양책이 한 세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원색적인 비난을 섞어 서머스의 의견을 반박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해 초까지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이 더디고 글로벌 공급체인이 정상화되지 않은 영향으로 일부 상품의 가격이 상승할 수 있을 것이나 인플레이션은 심각하지 않을 거란 주장이었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해 7월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NYT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1조9000억달러 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과거의 경제 모델들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과거 모델을 적용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는 안전한 예측이 아니었다"고 시인한 바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던 자신의 과거 발언이 틀렸다고 공개 석상에서 인정했다.

경기부양책은 인플레 원인 아냐

바이든의 경기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히는 상황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학자가 나타났다. 토마스 퍼거슨 매사추세츠대 보스턴 명예교수 이야기다. 정치경제학자인 그는 1995년 경제 엘리트가 유권자보다 정치 시스템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정당 경쟁의 투자이론’으로 이름을 알렸다.
"부양정책 탓이 맞다 vs 아니다"…인플레이션 원인두고 2차전
퍼거슨 교수는 지난 3일 경기 침체를 감수하면서 금리를 인상하려는 통화정책은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Fed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잘못 진단한 탓에 고통만 증대됐다는 비판이다. 그는 신(新) 경제사상연구소(INET)에서 2020~2022년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다. INET는 2009년 설립된 싱크탱크로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가 사재 5000만달러를 출연해 설립됐다.

퍼거슨 교수에 따르면 2020년부터 바이든 정부가 살포한 코로나 보조금이 곧장 소비로 연결되지 않았다. 약 2년간 살포된 2조 1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 지원금 중 절반인 1조달러만 소비활동에 쓰였다는 분석이다. 총수요가 단기간에 급증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됐다는 주류 경제학자의 주장을 반박한 지점이다.

퍼거슨 교수는 부의 양극화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2020~2021년 주식과 채권시장의 호황으로 인해 소득 상위 10%의 자산가가 소비에 기여한 비중이 75%에 달했다는 주장이다. 이 기간 상위 1%가 소비 지출 증가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다.

퍼거슨 교수는 "코로나 지원금과 인플레이션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며 "되레 연방정부 및 주 정부가 지출을 줄이고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시점부터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급등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퍼거슨 교수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수입 가격 상승 △에너지 비용 인상 △기업 마진율 상승 △저임금 직종의 퇴직자 급증 등이다. 2021년 하반기부터 계속된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물류비용이 급등했고 지난해 전쟁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며 무역 환경이 더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전쟁으로 인해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비용은 지난해 급등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기업 마진율은 확장했다. 미 중앙은행 경제 데이터(FRED)에 따르면 2020년 1분기에 10% 수준이던 미국 기업 평균 세후 이익률은 2022년 2분기에 16%까지 증가했다. 집계를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최대치를 찍었다.

가장 큰 문제는 총공급 감소라고 짚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대퇴사' 열풍으로 인해 서비스 및 저임금 직종의 노동력이 많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되레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 엔데믹(풍토병화)을 선언하며 노동력을 약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방역에 손을 놓으면서 대면 서비스 업종에서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해 이탈하는 노동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퍼거슨 교수는 "저렴한 백신을 내놓겠다는 연방정부의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돌봄 노동, 간호 등 서비스 업계는 꾸준히 구인난에 허덕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거를 가정한 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짜야 한다. 인플레이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