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장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막기 위해 야당을 계속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장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막기 위해 야당을 계속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남는 쌀을 정부가 사주면 올해 7000억원, 2030년엔 1조4000억원이 드는데 정작 쌀값은 안 오르게 됩니다. 농민도, 국민도 원하지 않을 결과입니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잠사회관에서 만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목소리엔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지난해 10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초과 공급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강제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한 뒤 그는 3개월째 국회와 전국 농촌을 오가며 개정안의 문제점을 설파 중이다. 민주당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단독으로라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정 장관은 “농업의 미래를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쌀 의무 수매에 들어갈 연평균 1조원의 예산이면 청년 수천 명이 일할 1만㎡짜리 대형 스마트팜 300개를 만들 수 있다”며 “지금은 식량안보 강화와 농업의 첨단 스마트화, 고령화되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청년농 육성 등 미래를 위해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끝까지 野 설득할 것”

정 장관은 20일가량 남은 양곡관리법 ‘데드라인’까지 끈질기게 야당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쌀 가격 폭락에 대응해 정부가 초과 공급량보다도 20만t 많이 시장에서 격리(수매)했지만 쌀 가격은 작년 저점 대비 17% 오른 뒤 보합세에 머물고 있다”며 “단순히 남는 쌀을 사주는 정책은 농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필요한 것은 수급 균형”이라고 강조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매년 평균적으로 20만t의 쌀이 초과 생산된다. 지난해 12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민주당이 제시한 쌀 의무 수매가 이뤄지면 다른 작물 지원 사업 등을 병행하더라도 2030년 쌀 초과 생산량이 63만t으로 현재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쌀 가격 역시 80㎏ 기준 17만2000원 수준으로 2017~2021년 평균(19만3000원)보다 10.9% 하락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그는 “남는 쌀을 정부가 무조건 사주면 이미 쌀농사에 익숙한 농민들은 힘들여 다른 작물을 키울 유인이 사라지게 되고 공급 과잉만 더 심화된다”며 “처음엔 의무 수매를 외치던 농민들도 이제는 정부 설명이 설득력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대신 밥쌀을 짓던 논 4만㏊를 2026년까지 가루쌀과 밀, 콩 등 전략작물 재배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올해 논에 밥쌀 대신 가루쌀 등을 재배하면 ㏊당 50만~430만원을 지원하는 전략작물직불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는 “4만㏊는 쌀 초과 생산량 20만t이 생산되는 면적”이라며 “쌀 수급 균형을 맞춰 아낀 예산 수천억원을 활용해 쌀 경작지를 전략작물로 채워 45%로 떨어진 식량자급률을 5년 내 55%까지 반등시키겠다”고 말했다.

“농업에서도 슈퍼스타 나와야”

정 장관은 “언제든 필요한 식량을 필요한 만큼 수입할 수 있는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식량안보는 국제 협상의 기본 아이템이 됐다”며 “기후 변화와 전쟁 등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미국과 우크라이나에 총 2개뿐인 곡물엘리베이터를 올해 3개로 늘리는 등 5년 내 5개로 확대할 것”이라며 “동남아시아 남미 호주 등으로 유통망을 넓히고 곡물뿐 아니라 팜유, 카사바(전분) 등 확보 필요성이 높은 품목의 공급망을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구조의 혁신 역시 그가 올해 심혈을 기울일 과제다. 정 장관은 “올해 12월 시공간 제약 없이 도매 거래가 가능한 ‘농산물 온라인 거래소’(가칭 온라인 가락시장)를 출범시키고 현 정부 임기에 산지유통센터(APC) 100곳을 스마트화할 계획”이라며 “소비자가격의 47.5%에 달하는 유통비를 6% 이상 낮출 수 있어 물가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수출 확대를 위해선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정부가 인증하는 우수 한식당(가칭 K미쉐린) 선정에 나선다. 그는 “미식 중심지인 미국 뉴욕 최고의 식당에 한식당 아토믹스가 이름을 올릴 정도로 한식은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다”며 “아토믹스 같은 슈퍼스타가 늘수록 세계 속에 한식당 창업이 증가하고 한식 선호도가 높아지며 수출로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한국 기업의 수출 영토를 넓히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정 장관은 “한국을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준 통일벼를 현지 기후에 맞춰 개량한 신품종을 아프리카 7개국에 보급하는 ‘K라이스벨트’ 프로젝트를 전개할 것”이라며 “현지에서 216만t의 쌀을 생산해 3000만 명이 기아에서 벗어나게 돕는 모험적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그는 “농업 기술의 전수가 우리 농기계와 스마트팜, 나아가 우리 기업 전반의 시장 확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