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현금성 저출산 대책을 공개 비판한 뒤 “나 부위원장은 당 대표 선거에 불출마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커지고 있다. 나 부위원장은 8일 “대통령실 우려를 십분 이해한다”며 몸을 낮췄지만, 대통령실은 “지극히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며 나 부위원장을 재차 압박했다. 나 부위원장의 출마 여부가 3월 여당의 당대표 선거에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틀 만에 수습 나선 나경원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 부위원장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 부위원장
나 부위원장은 이날 SNS에 ‘자녀 출산 시 대출금을 탕감해주는 정책’에 대해 “아직까지 정책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고 당장 추진할 계획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며 “어찌 됐든 오해를 일으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정치권 일부 인사가 저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에 따른 향후 유불리 계산에 함몰돼 이번 사안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지난 6일 나 부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저출산 대책을 공개 비판한 지 이틀 만에 상황 수습을 위한 입장을 낸 것이다. 유감을 표하면서 자세를 낮추긴 했지만 자신에 대한 당내 비판 여론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대통령실 “정부 기조와 상반된 발언”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나 부위원장의 일련의 처사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나 부위원장이 SNS에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 “재정투입 부담도 크나, 그 불가피성도 뚜렷하다”고 쓴 대목을 문제 삼았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나 부위원장 발언에 대해 정부의 정책 기조와 상반된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나 부위원장은 그 후에도 굽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며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부위원장으로서 지극히 부적절한 언행”이라고 저격했다. 이어 “이런 일련의 언행은 정부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공직자로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기자회견 발언 내용에 대해 유감 표명까지 한 당권 주자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당 안팎에선 사실상 “당대표 선거에 불출마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는 분석이 퍼졌다. 당에서는 나 부위원장을 향한 비판 의견이 쏟아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나 부위원장은) 대통령실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며 “두 자리를 놓고 과거처럼 기회를 엿보면서 설치면 대통령실이 손절 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 부위원장과 연대를 도모했던 김기현 의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아젠다로 그 중요성을 나 부위원장께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책임 있는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출마하라는 압박으로 해석됐다.

나 부위원장이 당대표 선거와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통령실의 정책 비판 전엔 캠프 사무실을 물색하고 선거 실무진을 꾸리는 등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6일 대통령실의 공개 비판 직후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출 탕감 방안은) 위원회 차원에서 검토한 건데 개인 의견으로 치부한 건 너무하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나 부위원장이 이틀 만에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 부위원장과 가까운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브리핑은 출마를 만류하는 사인 아니겠냐”면서도 “다만 나 부위원장이 아직 출마 가능성을 놓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늦어도 이번주에는 나 부위원장이 출마 여부를 밝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윤, 김기현으로 단일화하나

김기현 의원
김기현 의원
나 부위원장이 불출마를 결정하면 친윤 진영의 후보는 김 의원으로 단일화될 전망이다. 이 경우 김 의원의 당선 가능성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의원이 결선투표에 가면 친윤 표가 결집되면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 의원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출마 선언 시기를 고심하던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대통령 업적에 기대는 ‘윤심 팔이’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더욱 힘을 보태는 ‘윤힘 후보’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며 9일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의원
안철수 의원
비윤계에선 “대통령실이 공개적으로 당대표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던 유승민 전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전당대회 ‘선거 룰’을 ‘당원투표 100%’로 개정한 데 이어 당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1위 후보인 나 부위원장의 불출마까지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내 한 비윤계 인사는 “윤 대통령이 ‘민심 1위’인 유 전 의원을 쫓아낸 데 이어 ‘당심 1위’ 후보마저 내쫓겠다는 것”이라며 “이래선 (전당대회가) 흥행이 되겠냐”고 꼬집었다.

맹진규/좌동욱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