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양곡법 개정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으로 임시국회가 소란스럽다. 개정의 요지는 간단하다. 쌀 생산량이 국내 예상 수요량보다 3% 이상 많거나 쌀 가격이 전년도보다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초과 물량을 매입해 보관하는 이른바 ‘시장 격리’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를 정부의 재량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으로 강제하는 동시에 매입 가격도 현재의 최저입찰가격이 아닌 시장가격으로 하고 장관의 재량인 매입 시기도 수확기로 고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당은 여러 부작용을 이유로 결사반대하고 있다. 정부도 거듭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1월 임시국회에서 야당이 강행 처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나온 배경은 수급 불균형 확대로 인한 쌀값 급락이다. 2017년 정부는 당시 기준 역대 최대인 37만t을 한꺼번에 격리했다. 이후 쌀값은 13~18% 올랐다. 올라간 쌀값은 2년간 어느 정도 유지됐는데, 2020년 태풍 피해로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많이 줄었고, 쌀값은 뛰기 시작했다.

쌀값이 오르자 농민들은 쌀 재배 면적을 늘렸다. 2021년 쌀 재배 면적은 2020년보다 6000㏊ 늘었다. 쌀 재배 면적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20년 만에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재배면적이 늘고 기상 상황도 좋자, 평년 생산량을 훌쩍 넘는 쌀 388만t이 생산됐다. 쌀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역대급 공급 증가로 쌀값은 급락할 수밖에 없었다. 쌀 수요는 가격탄력성이 크지 않다. 값이 싸져도 소비가 거의 늘지 않는다. 반면 공급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은 크게 하락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은 단기적으로 분명히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쌀값 하락의 근본 원인인 수급불균형은 오히려 악화시킬 개연성이 있다. 정부 수매에 따른 수확기의 일시적 가격 상승으로 재배면적 감소가 둔화해 수급불균형이 더 악화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초과 물량을 수매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던 농가도 쌀로 품목을 이전할 유인을 제공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배 면적 감소 폭 둔화로 2030년까지 연평균 43만2000t 초과 생산돼 2027년 1조1872억원, 2030년 1조4659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격리 물량을 보관하는 비용도 누적될 것이다. 수십조원의 재정이 투입되지만 그렇다고 농민이 큰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다. 같은 보고서는 산지 쌀값이 2030년 80㎏에 17만2709원으로 올해(18만7000원)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농가의 기대와 달리 중장기적으로 농가에도 손해가 된다.

이처럼 쌀의 시장격리 강제화는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같은 일시적 농민 달래기에 지나지 않는다. 쌀값 하락의 근본 원인이 수급 불균형 때문이라면 정부 정책은 소비를 늘리거나 초과 공급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소비는 늘릴 방법이 사실상 없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 시장 개방을 미루고 미루다 2021년 최종적으로 개방하면서 국내외 가격차를 감안해 쌀의 관세를 513%로 결정했다. 이렇게 국내 쌀 가격이 국제 가격의 여섯 배나 비싸게 유지되는 이상 밀과 같은 다른 대체재와 경쟁할 수 없다. 밥쌀 이외의 다른 용도를 위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없다. 게다가 이제는 입맛까지 변했다.

그렇다면 쌀 생산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다른 전략 작물로의 이전은 농업 인력의 고령화, 기계화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어떤 정책을 펼쳐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쌀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쌀 경작 면적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지인의 농지 취득과 농지 전용을 쉽게 해 원하는 농민만이라도 농사를 그만둘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식량안보라는 이름으로 탈농(脫農)을 막을 것인가. 사실 안보로 치면 식량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품목도 여럿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식량은 초과 생산된다. 안보와 직결된 것들이 안정적으로 수입될 수 있게 하는 건 외교에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