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열고 최종 의견 수렴에 나선다. 정부가 제시할 해법으로는 양국 기업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지원금을 기부하면 재단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일강제동원피해자 해법 토론회’를 개최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양국이 진행한 고위급 협의, 네 차례의 민관 협의 등의 경과를 설명하고 대안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토론회는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이 ‘그간의 대일 협의 및 국내 의견수렴 경위’를, 심규선 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 ‘재단 활동 개선동향’을 발제한 뒤 시민단체·학계·언론계 인사들이 90분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으로 병존적 채무인수를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1일 “한국 정부가 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과 일본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기부받아 일본의 피고 기업 대신 지급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병존적 채무인수는 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소송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채무를 대신 인수하고 한·일 양국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대납하는 방안을 뜻한다. 2018년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 문제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했다. 이처럼 얽힌 과거사 문제가 풀리지 않자 떠오른 대안이 병존적 채무인수다. 행정안전부가 이날 피해자지원재단 정관에 ‘피해자 보상’ 내용을 추가하는 변경안을 승인한 것 역시 사전 작업의 하나로 풀이된다.

변수는 일본 기업의 참여 여부다. 한국 측은 포스코가 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한 60억원을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강제징용 소송 피고인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이 지원금을 기부하지 않을 경우 배상의 진정성이 퇴색할 수 있다. 피해자 측은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직접 배상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기부금 납부 외에도 일본 측에 사죄 등 ‘성의 있는 호응’을 요청하고, 일본이 긍정적 태도를 보이면 해결책을 공표할 방침이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에서 토론회에 대해 “관련된 분들의 의견을 종합해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인지 판단하는 대단히 중요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은 비록 입장이 다르지만 피해자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가면서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 지향적인 파트너십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을 대표하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대리인단은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피해자 측이 이번 토론회와 관련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철저히 무시돼 왔다”며 “토론회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답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