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탄(自歎)

이미 지난 세월이 나는 안타깝지만
그대는 이제부터 하면 되니 뭐가 문제인가.
조금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그날까지
미적대지도 말고 너무 서둘지도 말게.


* 이황(李滉, 1501~1570) : 조선 문신이자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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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때까지
조금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그날까지…

퇴계 이황이 ‘자탄’을 쓴 시기는 64세 때입니다.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도산서원에 머물던 시기에 서울에서 찾아온 제자 김취려에게 준 것이지요. 자기는 이미 늙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그대는 아직 젊으니 앞으로 성심껏 노력하면 잘 될 거라고 격려하면서, 너무 조급하게 굴지도 말고 그렇다고 어영부영하지도 말고 그저 꾸준하게 해나가라고 조언하는 내용입니다.

시합 3시간 전부터 눈 감고 슈팅 연습

이 시를 읽으면서 처음 떠올린 사람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었어요. 그는 늘 시합 3시간 전부터 빈 코트에 나와 홀로 슈팅 연습을 했죠. 남보다 먼저 도착해 남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는 프로 스타! 놀라운 것은 그가 끊임없이 자유투를 던지는 동안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두 눈을 감고 슈팅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조금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때까지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거듭했는지 잘 보여 주지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프로농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구단주 팻 크로스였죠. 그는 조던의 탁월한 능력과 집중력이 이런 노력의 결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조던은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함께 ‘흙’을 쌓고 ‘산’을 이룰 수 있도록 솔선수범의 리더십까지 발휘했지요. 아울러 “경기하는 건 각각의 선수들이지만 챔피언십을 획득하는 건 팀”이라는 그의 지론을 확인시켜줬습니다.

어느 분야든 장인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요. 노력파 조던의 진면목을 알아본 팻 크로스도 프로농구 구단주가 되기 전엔 평범한 물리치료사였습니다. 그가 동부 리그 최하위팀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5년 만에 최고의 팀으로 키워낼 수 있었던 것도 ‘흙을 쌓아 산을 이루는’ 불변의 성공 원리를 깨우친 덕분이었지요.

카네기와 함께한 20년짜리 프로젝트

성공학의 대가인 나폴레온 힐도 그랬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일흔이 넘은 강철왕 카네기와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카네기는 세 시간 이상의 인터뷰에도 지치지 않고 “식사를 같이하면서 인터뷰를 계속하자”고 말했죠. 그는 카네기의 열정에 이끌려 사흘 밤낮이나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긴’ 인터뷰가 끝나자 카네기는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지요. 지금까지 말한 자기 철학을 바탕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자네가 이 프로그램을 완성하는데 대략 20년 정도가 걸릴 텐데 그동안 재정적인 지원은 없을 걸세. 그래도 하겠나?”

카네기의 뜬금없는 제안에 놀라긴 했지만, 그는 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카네기가 소개해준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철학을 정리했지요. 그 유명한 헨리 포드와 루스벨트 대통령 등 수많은 성공 인물들이 그를 거쳐 갔습니다. 그가 20년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일이든 ‘미적대지도 말고 너무 서둘지도 않으면서’ 꾸준하게 노력하면 꼭 이뤄진다는 믿음 덕분이었지요.

카네기의 말대로 그는 20년짜리 프로젝트를 통해 그만의 ‘성공 프로그램’을 창안해냈습니다. 그 결과 성공학의 대가가 됐고, 그의 책은 세계적인 밀리언셀러가 됐으며, 그의 강의 내용은 현대 성공학의 바이블이 됐지요.

‘가치 있는 느림’이 스피드를 이긴다

‘돌부처’로 불리는 바둑의 이창호 9단 역시 ‘미적대지도, 서두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열한 살에 데뷔해 2년 뒤인 1988년 최다 대국, 최다승, 최고 승률, 최다 연승의 진기록을 남겼지만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지요. 자신을 ‘느림보’라고 표현했는데, 그 속에 ‘조금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그날까지’ 남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연습하는 가치관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느린 행마로도 스피드를 제압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느린 쪽이 단지 둔한 수라면 스피드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둔한 수를 잘 두고 그 때문에 초반엔 자주 밀리곤 합니다만, 빠른 게 꼭 좋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느림에도 가치 있는 느림이 있지요. 가치 있는 느림은 스피드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 서두를 필요도 없지요.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할 때 가장 많이 겪는 유혹이 눈앞의 목표에 대한 조급증이라고 하지요. 짧은 시간에 성과를 얻는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그날까지/ 미적대지도 말고 너무 서두르지도 말게.’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에게 더욱 유익한 경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