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당일 밤 9시부터 스스로 못움직이는 '군중 유체화' 발생
특수본, 국과수 3D 시뮬레이션 등 토대로 원인 분석
"폭 3.2m 이태원 골목에 1㎡에 10.7명 빽빽…떠밀리다 넘어져"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이태원 참사가 폭 3m 남짓의 좁고 가파른 내리막 골목에 인파가 한꺼번에 빽빽하게 몰려 넘어지면서 발생했다고 결론냈다.

특수본은 13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3D 시뮬레이션 감정과 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 박준영 국립금오공대 교수 등 전문가 자문을 종합한 사고 원인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 사고 발생 이후 10분간 밀집도 계속 높아져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29일 오후 10시15분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밀집된 군중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해밀톤호텔 옆 T자형 좁은 골목으로 '떠밀려' 내려왔다.

이 때문에 이 골목의 A 주점 앞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로 넘어졌다.

이후 뒤에서 따라오던 사람들도 차례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골목 아랫쪽에선 사람들이 이태원역 방향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골목 뒤편의 군중 밀집도는 점차 높아졌다.

사고 발생 골목 폐쇄회로(CC)TV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해당 골목의 군중 밀도는 오후 10시15분께 ㎡당 7.72∼8.39명에서 5분 뒤 ㎡당 8.06∼9.40명으로 증가했다.

오후 10시25분께는 ㎡당 9.07∼10.74명까지 늘었다.

첫 112신고가 접수된 오후 6시34분께부터 사고 발생 골목은 양방향 보행이 가능했지만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는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후 8시께부터는 이태원역 각 출구를 통해 인파가 대거 유입됐다.

이태원역에서는 오후 5시부터 한시간 동안 승차 인원(2천129명)보다 4배가량으로 많은 8천68명이 하차하기 시작했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시간당 약 1만명씩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오후 8시30분께부터 세계음식거리로 모여드는 인파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세계음식거리와 사고 골목이 만나는 T자형 삼거리를 중심으로 극심한 정체가 발생했다.

김동욱 특수본 대변인은 "오후 10시15분 첫 전도(넘어짐)가 발생한 이후 약 15초 간 뒤편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도되는 상황이 4차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상황을 모르는 위쪽 인파가 계속 밀려 내려오는 상황이 오후 10시25분까지 10분간 지속되면서 10m에 걸쳐 수백 명이 겹겹이 쌓이고 끼이는 압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이 골목에서 모두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폭 3.2m 이태원 골목에 1㎡에 10.7명 빽빽…떠밀리다 넘어져"
◇ "떠밀려 가는 느낌"…75분 전부터 '군중 유체화'
참사 당시 '군중 유체화' 현상이 벌어질 만큼 현장엔 사람이 과도하게 밀집했다.

사람들이 밀착한 나머지 각각 독립적인 입자가 아닌 물 등의 유체와 같은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군중 유체화는 오후 9시께부터 이미 세계음식거리 양방향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T자형 골목 삼거리 좌우에서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전인 오후 10시13분께는 T자형 내리막길로 인파가 떠밀려 내려오면서 군중 유체화 현상이 더 뚜렷해졌다.

세계음식거리의 군중 밀도는 이미 오후 9시1분께 ㎡당 9.74∼12.09명 수준이었다.

오후 10시16분께 ㎡당 6.94∼8.06명으로 줄었지만 오후 10시26분께 ㎡당 8.06∼9.40명으로 다시 늘었다.

사고가 일어난 골목과 세계음식거리 등 인파가 몰렸던 일대에 오후 9시부터 오후 10시26분까지 ㎡당 최소 2.68명에서 최대 12.09명이 빽빽하게 밀집했던 셈이다.

부상자들은 "인파에 밀려 강제로 사고 지점으로 가게 됐고 파도타기처럼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이 있었다", "뒤에서 미는 힘 때문에 자꾸 공중으로 떠서 발이 떨어진 상태였다", "떠밀려 가는 느낌이 있었는데 사고 지점에서 그 힘이 더 세게 느껴졌다"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 3.2m 좁은 골목·11.2도 가파른 지점서 첫 '넘어짐'
이처럼 많은 인파가 몰리게 된 이유는 크게 지역적·장소적·시기적 요인 세 가지로 분석됐다.

이태원은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으로 이태원로 일대에만 30여 개국의 전통 음식을 취급하는 외국 음식점, 클럽·라운지바, 노점상 등이 즐비해 해마다 핼러윈 데이 때면 많은 사람이 몰린다.

특히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T자형 내리막 경사인데다 이태원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어 지하철로 오가는 인파가 꾸준히 유입되는 곳이다.

이 골목의 도로 폭은 평균 4m 내외다.

특히 사고 발생한 지점의 도로 폭은 국과수 감정 결과 3.199m로 나타나 이 골목에서 가장 좁은 지점에 해당했다.

특수본 관계자는 "세계음식거리 역시 불법 구조물이 설치된 지점의 폭이 3.615m까지 좁아져 인파 이동을 더욱 어렵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사고 현장 골목의 가장 아래 지점인 편의점을 기준으로 세계음식거리까지의 높이차는 4.5∼5.4m 였다.

이 골목이 내리막 경사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음식거리 도로 경사도는 0.2∼2.257도(deg)로 대체로 완만하지만 사고 발생 골목은 가장 완만한 경사가 6.575도로 가파르다.

최초 사고 현장인 A 주점 일대는 경사도가 8.847∼11.197도까지 올라간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며 실외 마스크 착용, 일정 인원 이상 집합 금지, 식당 영업시간 제한 등 여러 방역 조치가 해제된 것도 인파가 몰린 한 원인으로 특수본은 짚었다.

희생자들의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 뇌부종(저산소성 뇌손상) 등이었다.

사람에 눌리고 끼어 숨을 쉬지 못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희생자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똑같지 않고 형태도 다 다른데다 각각 움직임에 따라 압력이 달라졌을 것으로 추정돼 골든타임을 어느 한 시점으로 특정하긴 어렵다고 특수본은 설명했다.
"폭 3.2m 이태원 골목에 1㎡에 10.7명 빽빽…떠밀리다 넘어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