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배우 송혜교 /사진=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 배우 송혜교 /사진=넷플릭스 제공
불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이 구워지는 소리에 문동은(송혜교 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학교 폭력 피해자인 그는 뜨겁게 데워진 고데기를 팔과 다리에 가져다 댄 가해자 무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통스러워하는 본인의 모습을 보고 "온도를 체크해달라"며 웃음을 터트리는 가해자의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옥 같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문동은을 괴롭혔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한 장면이다. 문동은은 지독한 학교 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신체, 정신적으로 지속해 위협을 주는 충격적인 사건 또는 상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발생하는 증상 중 가장 흔한 것이 '재경험(re-experience)'이다. 불안과 공포, 공황, 우울, 무력감, 분노와 같은 정신적 증상과 함께 긴장성 부동화 등 신체적인 증상도 나타난다.

이에 PTSD를 겪으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놀랄 수 있고, 연관된 상황을 회피하려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율신경계가 과각성돼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김선현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대한트라우마협회 회장)는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한 것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이건 절대 본인 잘못이 아니다"며 "감정과 건강을 체크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회복에 필요한 운동·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등 정서적 안정을 취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할 것을 김 교수는 권했다. 개인별로 회복 속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조급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당부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더 글로리' 시청자들은 일부 장면에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피해자의 아픔과 복수를 통해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교수는 "비슷한 일을 조금이라도 겪었던 사람들은 보는 것 자체로 힘들어질 수도 있다. 가해자 역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니 마음의 동요가 일 수 있다. 하지만 '더 글로리'의 경우 학교 폭력이 얼마나 나쁘고 잔인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치밀한 기획에 의해 표현됐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제한을 둔 점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연령 제한 없이 무분별하게 접하게 되는 영상과는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그렇다면 문동은과 같은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에게 주변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섣부른 위로 또는 판단보다는 조용한 지지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김 교수는 "좌절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섣부른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분히 기다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감정이나 물질적으로 정말 필요로 할 때 함께 해줘야 한다. '난 너의 편이 되어줄 수 있어'라며 자리를 뜨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학교 폭력 문제와 관련해 김 교수는 "또래 집단으로부터 받는 피해 외에도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좌절하는 일이 많다. 우리 사회와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와주고 지지해줘야 한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