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삽화. 북레시피 제공
<오페라의 유령> 삽화. 북레시피 제공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뮤지컬부터 떠올린다. 영국의 천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노래를 짓고 오는 3월 배우 조승우가 국내 무대에 오른다는 바로 그 뮤지컬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원작이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변호사 출신 기자였던 르루는 1907년 어느 날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파리 9구에 있는 유서 깊은 극장 ‘오페라 가르니에’의 지하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파리를 떠돌던 오랜 소문을 떠올렸다. 오페라 가르니에가 생기기 전 그 자리에 있던 국립 음악학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전소됐다.

이 화재로 촉망받던 젊은 피아니스트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가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극장 지하에 유령처럼 숨어 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리 골목에 퍼졌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는 이 유령의 소행이라는 말, 그가 약혼녀를 위해 사랑의 노래를 여전히 작곡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르루는 이런 소문에 상상력을 더해 <오페라의 유령>을 완성했다.

소설은 ‘사랑이라는 비극’을 말한다. 작품 속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사랑하면 불행해지는 건가요?” “그래요. 사랑하는데도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죠.” 소설 속 ‘에릭’은 태어날 때부터 흉한 외모로 인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다. 그는 오페라 배우 ‘크리스틴’을 사랑하지만, 크리스틴은 소꿉친구인 귀족 청년 ‘라울’과 사랑하는 사이다.

크리스틴의 숨은 노래 선생을 자처하던 에릭은 크리스틴을 주연 배우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급기야 크리스틴을 자신의 지하 공간에 납치한다. 사랑이라는 변명 아래 크리스틴에게 집착하던 에릭은 그의 불행을 연민하는 크리스틴의 따뜻함에 감동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박해일 분)은 서래(탕웨이 분)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사랑 고백일까? 당신을 사랑해서 스스로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는 그의 말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 없이 사랑을 말한다. 자신의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사랑을 완성시키는 <오페라의 유령> 속 에릭처럼, 오페라가 아니지만 오페라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오페라의 유령>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목숨까지 내놓게 만드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불멸의 고전으로 살아남았다. 르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끊임없이 뮤지컬로, 영화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최근 출판사 북레시피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예나의 연필화(그림)를 더해 <오페라의 유령>을 새로 출간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