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의 저작권 세상] '저작권=남의 물건'…빌려쓰듯 조심히 이용해야
#1. 인기 유튜버 A는 한 인디밴드의 팬이다. 그는 인디밴드 공연을 배경음악으로 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서 광고가 붙지 않도록 했다. 이후 이 인디밴드가 항의하자 A는 홍보를 위해 한 일이고, 자신은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며 밴드에 불쾌감을 표했다.

#2. 영화 마니아인 대학생 B는 종강을 맞아 재학생을 위한 영화 상영회를 준비했다. 최신 영화를 상영하고 함께 토론해보자는 취지였는데, 참여자에게 소액의 입장료를 받았다. 그런데 영화유통사가 경고장을 보내자 B는 토론모임까지 막는 회사의 조치에 분노했다.

#3. 오랜 외국 생활 후 귀국한 C는 한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는 서비스하지 않는 영상이 그리웠다. 그래서 토렌트를 통해 좋아하는 영상을 구해 봤다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됐다는 경찰서 통보를 받았다. 그는 제대로 된 유통채널을 갖추지 않고 침해 단속에만 열을 올리는 제작사를 성토했다.

#4. 웹소설의 팬 D는 이른바 2차 창작을 즐긴다. 그는 웹소설 주인공을 모티브로 하는 굿즈를 만들어 판매한다. 웹소설 작가가 속상하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D는 팬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팬덤을 동요시키고 있다.

위 사례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같이 억울함을 느낄 만하고, 나도 언젠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있을 법하다. 누구나 인터넷에 있는 것들을 쉽게 이용하고, 이것들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보니 저작권 문제는 우리 일상에 크고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저작권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크고 작은 논란이 생긴다. 저작권법을 연구하는 학자와 실무자 역시 두꺼운 책, 논문 및 판례와 씨름하고, 큰 고민을 한 다음에야 막연하게나마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위 사례의 주인공들은 모두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행동의 정당성에 주목할 뿐 상대방 의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작권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가지는 권리로, 그 본질은 자신의 저작물이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비록 법에서는 저작자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해 정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저작물을 이용하려는 자는 저작자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남의 물건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 물건을 빌려줄 때도 상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음악 영화 소설 역시 저작자의 것으로, 그가 결정한 바에 따라 이용해야 한다. 만약 저작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면, 이를 지레짐작하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저작자의 입장이 돼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가짐,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저작권법의 핵심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