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점거로 얼룩진 곳은 민간 기업뿐만이 아니다. 전국 시·군·구 청사와 공원, 재개발 지역 역시 불법 점거로 신음하고 있다. “표현의 수단으로 불법 점거가 당연시됐다”(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얘기마저 나온다.

광장과 공원 등 시민 공간은 이미 무법 집회·시위 세력이 장악했다. 대통령실 이전 후 ‘집회 1번지’가 된 서울 삼각지역 인근 용산 전쟁기념관이 대표적이다.

15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용산구에서 열린 집회는 총 189건이다. 하루평균 6건꼴이다. 전년 동기(73건)에 비해 116건(158.9%)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7~12월(하반기) 집회 건수는 71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52.2% 늘었다. 그렇다고 광화문광장이 있는 종로구의 집회 건수가 줄지도 않았다. 하반기 종로구 집회 개최 건수는 871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5.5% 증가했다.

시·군·구 청사는 동네북 신세다. 공무원 사이에선 “지방자치단체 청사 점거가 유행”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지난달에만 서울 강북구청을 비롯해 전남 순천시청, 충남 태안군 시의회, 대전시청 등이 잇따라 노조에 점거당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몫이다. 민원인이 필요한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례는 넘쳐난다. 공무원 역시 노조 대응 업무로 차출되면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다.

불법 점거를 지능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들이 대표적이다. 세입자들은 더 많은 이주비를 타내기 위해 이주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버티기에 나선다. 서울 방배동 방배13구역 재개발 현장에선 전체 1500여 가구 중 35가구가 이주하지 않고 있다. 이곳을 방문해 미이주 가구의 거주 여부를 살펴본 결과 약 10%를 제외하곤 실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철거민연합회와 인근 노숙자들 역시 이 지역 불법 점거에 동참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서초구나 서울시 측은 ‘조합과 세입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으로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불법에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푸념했다.

원종환/이광식/김우섭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