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2020년 6월 삼성전자 반도체 자회사인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임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2020년 6월 삼성전자 반도체 자회사인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임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핵심 자회사인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 장비'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부장검사 박진성)는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등 위반 혐의로 세메스 전 연구원과 기술 유출 브로커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16일 밝혔다.

삼성전자가 1993년 설립한 세메스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큰 축을 담당하는 핵심 자회사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설비를 제작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수출 규제 1년을 맞은 2020년 6월 세메스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설비 경쟁력 강화안 등을 점검하며 임직원들을 격려한 바 있다.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 장비는 기판 손상을 최소화해 초미세 반도체의 불량률을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장비다. 약액 등으로 반도체 웨이퍼를 세정한 후 초임계 상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웨이퍼를 건조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 바 있다.

이번에 구속기소된 A씨(47)는 세메스의 전 직원으로 2016년 세메스를 그만둔 뒤 2019년 새 회사를 설립했다. 2021년 6월 세메스 협력사 대표 B씨를 통해 부정 취득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 장비의 핵심도면을 기술 유출 브로커 C씨에게 넘겨 중국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 등은 이같은 기술 유출로 2019년 12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세정 장비 20대 등을 수출해 1193억원의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앞)과 삼성 경영진이 2020년 6월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의 충남 천안 사업장을 찾았다. 방진복을 입은 이 회장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앞)과 삼성 경영진이 2020년 6월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의 충남 천안 사업장을 찾았다. 방진복을 입은 이 회장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A씨는 또 함께 구속기소된 세메스 전 연구원 D씨와 공모해 세메스가 2021년 5~7월 일본에 이어 세계 2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매엽식 인산 세정 장비 기술' 정보를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직원들에게 누설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인산 세정 장비는 인산 약액을 사용해 반도체 웨이퍼를 1개씩 세정하는 장비다. 웨이퍼 표면에 남아있는 실리카 등을 제거하는 데 쓰인다. 이 장비 개발을 성공한 곳은 전 세계에서 세메스와 일본 시바우라 단 2곳뿐이다.

이 밖에도 A씨는 2019년 7월~2022년 10월 자신의 명의로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끼워넣기 거래와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을 통해 27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A씨는 지난해 5월 세메스의 또 다른 기술인 습식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한 차례 구속기소됐다. 구속기한 만료 등으로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으나 검찰이 추가 기술 유출 범죄를 밝혀내면서 다시 수감됐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범죄 수입을 환수하기 위해 A씨 업체에 있던 습식 세정 장비 6개를 압류하고, 예금채권과 부동산 가압류 등을 통해 535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전 조치했다.

검찰 관계자는 "세메스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인건비를 포함해 초임계 기술개발 연구비 등에 약 350억원을 투자했다"며 "350억원 이상의 직접 손해가 발생했으며 세메스의 기술경쟁력 저하로 인해 주요 거래처 수주가 10%만 감소해도 연간 400억원 이상의 손해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