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가 맞물리며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기업 신용도에도 부정적 전망이 가시화하고 있다. 국내 주요 산업 10개 중 4개는 올해 실적이 작년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됐고 기업 신용등급 하향 위험도 1년 전보다 훌쩍 높아졌다. 특히 금융업은 은행과 손해보험을 제외한 모든 업종의 실적이 악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기업 실적이 줄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자금 조달 비용 증가→경영 악화→추가 신용 하락’의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올해 금융업 수난?…신용등급 줄하향 우려

기업 ‘신용 리스크’ 덮친다

16일 나이스신용평가의 ‘2022년 신용등급 변동 현황 및 2023년 방향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이 회사가 부정적 등급 전망을 부여한 기업은 모두 40곳으로 긍정적 전망을 받은 기업(28곳)보다 40% 넘게 많았다. 부정적 전망을 받은 기업 수 대비 긍정적 전망을 받은 기업 수 비율을 뜻하는 ‘P/N 배율’은 0.7배로 1년 전 0.82배보다 낮아졌다. 올해를 시작으로 향후 기업 신용등급이 하향될 위험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한국신용평가도 올해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신평이 국내 주요 25개 업종을 대상으로 올해 신용등급 전망을 매긴 결과 증권·캐피털·생명보험·저축은행 등 금융 4개 업종과 석유화학·건설·디스플레이 등 비금융 3개 업종은 신용 전망이 ‘부정적’으로 강등됐다. 산업 자체의 전망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 업종도 25개 중 11개에 달했다.

최형욱 한신평 평가정책본부 실장은 “경기 침체에 따른 가계와 기업의 신용위험이 새로운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한계기업 부도 위험 급증”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유동성 확대와 초저금리 기조가 기업 신용등급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부동산·주식·대출시장이 활황을 누리며 관련 업종의 실적이 개선됐고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불거진 유동성 위기와 경기 침체 우려가 올해부터는 기업 신용 여건에도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경제리스크분석부장은 “올해 한계기업의 부도 건수가 급증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올해 29개 비금융업종 중 10개, 8개 금융업종 중 6개 기업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업종 중 나머지 은행과 손해보험도 ‘실적 유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브리지론을 많이 취급한 증권·캐피털·저축은행을 ‘유의 업종’으로 꼽았다. 이경화 나신평 연구원은 “실적 저하가 바로 신용등급 조정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지금은 글로벌 수요 둔화, 유동성 위험, 부동산 경기 하강 등 위험 요인이 여느 때보다 예측 불가한 시기”라며 “투기 등급 기업을 중심으로 단기간 내 급격한 하향 압박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은 당장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 부담이 더 커진다. 자금 조달 비용 증가에 따른 경영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면 기업은 신용등급이 추가로 강등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른 회사채 디폴트, 구조조정 확대 등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올 3월 이후 기업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