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달성하면 수익금을 주겠다.”

조건부 투자를 받은 회사가 사업 성공을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등 사실상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해도 애초부터 사업이 성공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투자자에게 돈을 줄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투자자 책임 범위를 한 차원 더 넓힌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투자자 A씨가 전자제품 판매업을 하는 B사를 상대로 낸 약정금 지급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패소 취지로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7년 1월 B사에 1000만원을 투자하면서 “B사는 매출 발생 시마다 수익의 10%를 A씨의 투자 원금을 포함한 다섯 배 금액이 될 때까지 상환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B사 대표는 전자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할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결국 B사 대표는 제품설명회에서 유통 대리점주를 기망해 선급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형사처벌(사기)을 받았다. 이에 A씨는 B씨를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이 제시한 근거는 민법 150조 1항이다. 이 조항은 ‘조건의 성취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당사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때에는 상대방은 그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B사는 처음부터 매출을 발생시킬 의사가 전혀 없었던 만큼 ‘매출 달성’이라는 조건 성취를 방해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게 A씨가 내세운 주장이다.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약속한 수익금을 돌려줄 조건인 ‘사업 목표가 달성된 것처럼 의제(간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B사가 A씨에게 투자금 1000만원의 다섯 배인 5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민법 150조 1항이 정한 ‘조건 성취를 방해한 때’의 범위에는 조건의 성취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열심히 사업을 추진했으면 될 일을 성심성의껏 일을 진행하지 않아서 사업이 실패한 경우’가 먼저 성립돼야 ‘사업주가 수익금을 주기 싫어 사업을 스스로 게을리한 때’도 성립된다는 얘기다. B사는 투자금을 받을 당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