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과 토끼, 둘 다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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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문화살롱
■ '25시' 작가 게오르규의 질문
이어령 초청으로 방한해 강연
잠수함 근무할 때 '토끼 역할'
그때처럼 경제·안보 위기이지만
한국은 대양 향한 '열쇠의 나라'
고두현 논설위원
■ '25시' 작가 게오르규의 질문
이어령 초청으로 방한해 강연
잠수함 근무할 때 '토끼 역할'
그때처럼 경제·안보 위기이지만
한국은 대양 향한 '열쇠의 나라'
고두현 논설위원
“20대 때 잠수함에서 근무했죠. 그땐 산소측정기가 없어서 산소에 민감한 토끼를 잠수함 밑바닥에 태웠어요. 산소가 모자라면 토끼가 사람보다 여섯 시간 먼저 죽죠. 졸병인 저는 토끼가 없는 잠수함 밑바닥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괴로워하면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때 전 시인이 왜 인류에게 유용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시인이 괴로워하면 그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소설 <25시>로 유명한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가 1974년 방한 때 한 말이다. 당시 이어령 문학사상 주간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시대 변화에 민감한 시인·작가를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보잘것없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는 내가 글을 썼고 또 괴로워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 독일로 망명한 그는 뜻밖에도 수용소에 감금됐다.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과 소련군이 적성국가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체포한 것이다. 2년간 포로 생활을 한 뒤 그는 1948년 아내와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듬해 파리에서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출간한 소설이 곧 <25시>다.
<25시>의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평범한 농부다. 2차 대전 때 유대인으로 몰려 강제 수용소로 압송된 그는 천신만고 끝에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적성국 루마니아인이라며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감금된다. 독일로 끌려가 전쟁노무자와 포로 감시병 노릇을 하다 프랑스군 포로를 데리고 연합국 진영으로 탈출한 뒤에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곧 전범으로 분류돼 수용소에 갇힌다. 전후 석방돼 가족과 재회한 것도 잠시, 18시간 뒤 그는 다시 감금되고 만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동유럽인 체포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 소설이 프랑스어로 출간되자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작가와 주인공의 운명이 2차 대전을 지나온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게오르규는 소설 속에서 ‘25시’를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 바로 서구 사회가 처한 지금 이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잠수함 속의 토끼’는 1970년대 중반 박범신 단편소설 ‘토끼와 잠수함’에도 등장한다. 이 단편의 무대는 출산을 앞둔 아내 때문에 급히 무단횡단하다 걸린 ‘나’와 즉결심판에 넘겨질 사람들을 태운 호송 버스. 사람 수를 더 채울 요량으로 버스가 한여름 찜통 속에서 도심을 빙빙 돌다 극한상황과 함께 여자와 아이를 치어 죽이면서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여기에서 버스는 잠수함이고, 그 속에 갇힌 사람은 토끼다.
토끼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예민하다. 소형동물 중에서도 유난히 심장이 작다. 신체의 0.2%밖에 안 된다. 개나 고양이(0.7%)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심박수는 1분에 180~300회, 호흡은 1분에 55회로 사람의 3배나 된다. 폐활량이 적은 만큼 숨을 자주 쉬어야 한다.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급감한다. 장운동 사이클도 짧아서 여섯 시간 굶으면 사람이 하루종일 굶은 것과 비슷해진다.
올해는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가 가중될 전망이다. 이럴 때일수록 산소 농도를 미리 알려주는 토끼의 감지력과 예지력이 제대로 발휘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와 지구촌 전체를 상징하는 잠수함이 안전한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며칠 후면 설날, 진짜 토끼해가 시작된다. 나라 안팎의 복합 난관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예민함만큼이나 명민함을 겸비한 토끼의 지혜를 지렛대로 삼는다면 못 뛰어넘을 벽도 없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금리와 물가는 치솟고, 전쟁과 대결의 악순환이 계속될지라도 토끼 귀를 쫑긋 세우고, 토끼 눈을 크게 뜨고, 토끼 뒷다리에 힘을 모으고 날렵하게 뛰자. 그러면 온갖 난제를 한꺼번에 풀 열쇠가 보일지도 모른다.
1974년 이후 몇 차례 방한해 <한국 찬가>까지 출간한 게오르규는 <25시를 넘어서 아침의 나라로>라는 책에서 한국을 ‘열쇠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지도를 펴고 유심히 보면 한국이 열쇠처럼 생겼는데, 가장 큰 대륙의 시작점에 태평양을 향해 걸려 있는 열쇠 같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지구촌의 많은 문제를 ‘열쇠의 나라’인 한국이 풀 것”이라며 “한국은 하나의 반도가 아니라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와 같은 나라”라고 평했다. 그의 덕담처럼 지혜로운 열쇠로 아름다운 귀고리 시대를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마 우리의 시침(時針)은 아직 25시 안쪽에 있다.
소설 <25시>로 유명한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가 1974년 방한 때 한 말이다. 당시 이어령 문학사상 주간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시대 변화에 민감한 시인·작가를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보잘것없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는 내가 글을 썼고 또 괴로워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박·호흡 빠른 만큼 변화 민감
그가 탄 잠수함은 독일군 소속이었다. 당시 루마니아가 독일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1주일 만에 징집 영장을 받고 전장으로 떠난 그는 밀폐된 잠수함에 갇혀 지내면서도 창작 메모를 차곡차곡 쌓았다. 이 덕분에 제대하자마자 유명 작가가 됐다. 하지만 곧 시련이 닥쳤다. 종전을 1년 앞둔 1944년 8월,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것이다.아내와 함께 독일로 망명한 그는 뜻밖에도 수용소에 감금됐다.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과 소련군이 적성국가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체포한 것이다. 2년간 포로 생활을 한 뒤 그는 1948년 아내와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듬해 파리에서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출간한 소설이 곧 <25시>다.
<25시>의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평범한 농부다. 2차 대전 때 유대인으로 몰려 강제 수용소로 압송된 그는 천신만고 끝에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적성국 루마니아인이라며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감금된다. 독일로 끌려가 전쟁노무자와 포로 감시병 노릇을 하다 프랑스군 포로를 데리고 연합국 진영으로 탈출한 뒤에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곧 전범으로 분류돼 수용소에 갇힌다. 전후 석방돼 가족과 재회한 것도 잠시, 18시간 뒤 그는 다시 감금되고 만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동유럽인 체포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 소설이 프랑스어로 출간되자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작가와 주인공의 운명이 2차 대전을 지나온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게오르규는 소설 속에서 ‘25시’를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 바로 서구 사회가 처한 지금 이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잠수함 속의 토끼’는 1970년대 중반 박범신 단편소설 ‘토끼와 잠수함’에도 등장한다. 이 단편의 무대는 출산을 앞둔 아내 때문에 급히 무단횡단하다 걸린 ‘나’와 즉결심판에 넘겨질 사람들을 태운 호송 버스. 사람 수를 더 채울 요량으로 버스가 한여름 찜통 속에서 도심을 빙빙 돌다 극한상황과 함께 여자와 아이를 치어 죽이면서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여기에서 버스는 잠수함이고, 그 속에 갇힌 사람은 토끼다.
토끼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예민하다. 소형동물 중에서도 유난히 심장이 작다. 신체의 0.2%밖에 안 된다. 개나 고양이(0.7%)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심박수는 1분에 180~300회, 호흡은 1분에 55회로 사람의 3배나 된다. 폐활량이 적은 만큼 숨을 자주 쉬어야 한다.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급감한다. 장운동 사이클도 짧아서 여섯 시간 굶으면 사람이 하루종일 굶은 것과 비슷해진다.
"반도를 넘어 대륙의 귀고리로"
잠수함은 어떤가. 물샐틈없는 밀폐 공간에 햇빛도 들지 않고 통풍도 되지 않는다. 2차 대전 땐 냉각 장치조차 없는 ‘찜통 지옥’이었다. 산소가 줄어들면 질식해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토끼의 위험 감지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광부들의 생명줄이었던 ‘탄광 속의 카나리아’보다 훨씬 더 공기 변화에 민감했다. ‘잠수함 속 토끼’가 ‘탄광 속 카나리아’와 함께 위기 신호를 알리는 용어로 사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올해는 경제와 안보의 복합위기가 가중될 전망이다. 이럴 때일수록 산소 농도를 미리 알려주는 토끼의 감지력과 예지력이 제대로 발휘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와 지구촌 전체를 상징하는 잠수함이 안전한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며칠 후면 설날, 진짜 토끼해가 시작된다. 나라 안팎의 복합 난관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예민함만큼이나 명민함을 겸비한 토끼의 지혜를 지렛대로 삼는다면 못 뛰어넘을 벽도 없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금리와 물가는 치솟고, 전쟁과 대결의 악순환이 계속될지라도 토끼 귀를 쫑긋 세우고, 토끼 눈을 크게 뜨고, 토끼 뒷다리에 힘을 모으고 날렵하게 뛰자. 그러면 온갖 난제를 한꺼번에 풀 열쇠가 보일지도 모른다.
1974년 이후 몇 차례 방한해 <한국 찬가>까지 출간한 게오르규는 <25시를 넘어서 아침의 나라로>라는 책에서 한국을 ‘열쇠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지도를 펴고 유심히 보면 한국이 열쇠처럼 생겼는데, 가장 큰 대륙의 시작점에 태평양을 향해 걸려 있는 열쇠 같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지구촌의 많은 문제를 ‘열쇠의 나라’인 한국이 풀 것”이라며 “한국은 하나의 반도가 아니라 아시아 대륙의 귀고리와 같은 나라”라고 평했다. 그의 덕담처럼 지혜로운 열쇠로 아름다운 귀고리 시대를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나마 우리의 시침(時針)은 아직 25시 안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