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호라체크 ‘엘리자베트(시시) 황후’(1858)
요제프 호라체크 ‘엘리자베트(시시) 황후’(1858)
영화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만 ‘몰아보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시장 거리에 따라 미술이나 유물 전시도 얼마든지 몰아서 볼 수 있다. 올해 설 연휴는 ‘전시 몰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두 곳만 둘러봐도 세계적인 유물과 국내외 거장의 그림 등을 내세운 ‘블록버스터 전시’를 여럿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연말 연초를 보내느라 삭막해진 마음을 인문학과 미술로 촉촉하게 적셔보는 건 어떨까.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외 미술관·박물관의 소장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명작 96점을 가져온 전시다.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둘러싸였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안 오겠느냐”(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는 평가처럼, 이 전시는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전시 중 하나다. 폐막일이 오는 3월 1일인 만큼 남은 전시 기간이 길지 않다. 전시의 단점은 딱 하나. 관람객이 너무 많아 표를 사고 입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의 유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세계 최고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소장품 66점을 빌려왔다.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최초의 문자(쐐기문자)가 태어난 곳이다. ‘모든 이야기의 원조’로 불리는 길가메시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60진법, 도시의 개념도 이곳에서 나왔다. 전시장에서 쐐기문자 기록물과 조각상, 부조 등 유물을 통해 4500년 전 인류 문명의 토대를 닦은 이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효종국장도감의궤
효종국장도감의궤
국가대표 박물관답게 한국 유물 전시 라인업도 탄탄하다.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는 조선 왕실의 중요 행사를 ‘풀 컬러’ 그림으로 기록한 의궤 297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전시에 나온 의궤를 보면 조선 왕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행사 장면과 건물 구조, 행사에 사용한 물건의 형태 등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수준 높은 묘사력, 자세한 기록 덕분에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과 함께 구매하면 성인 기준 25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최우람 ‘작은 방주’
최우람 ‘작은 방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중 가장 인기가 뜨거운 건 ‘국립현대미술관(MMCA) 현대자동차 시리즈 2022: 최우람-작은 방주’다. 전시장에는 세계적인 설치작가 최우람(53)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계 생명체’들이 나와 있다. 움직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퍼포먼스 시간이 정해져 있다. ‘작은 방주’는 10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20분씩 작동하고, 원탁은 10시20분에 시작해 5분 동작, 15분 휴식을 반복한다. 작품 주변은 평일 낮에도 작동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꽉 들어찬다.

최우람의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대지미술가 임옥상의 개인전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에 나온 설치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압도적인 작품 스케일이 눈을 즐겁게 한다. 아직 감상하지 않았다면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도 함께 봐야 후회가 없다. 이중섭의 1940~1950년대 전성기 작품 90여 점과 관련 기록물을 선보이는데, 주요 전시작 중 상당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