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정부와 시장, 적인가 동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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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제압 대상' 5년 헛발질
반면교사로 친구 돼야 경제 살아
만능 아니지만 시장 활성화가 동력
'자유·시장·영업사원' 외치는 尹정부
고용부 공정위 금융위 특히 중요
정치가 기업 이기는 시대 끝나
허원순 논설위원
반면교사로 친구 돼야 경제 살아
만능 아니지만 시장 활성화가 동력
'자유·시장·영업사원' 외치는 尹정부
고용부 공정위 금융위 특히 중요
정치가 기업 이기는 시대 끝나
허원순 논설위원
“새롭게 좀 바꾸려는데, 부처 공무원들이 ‘시장, 수요·공급’ 얘기만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 비서실 고위 인사에게서 들은 속내 토로다. ‘공공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공식화되기 직전 무렵이었다. 네댓 명의 비보도 자리였고 정책 뒷얘기나 듣기로 작정한 터라 입을 다물었지만, 속으로는 ‘저런! 시장과 수급이 기본인데…’라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적인양 시장과 싸우며 5년을 보낸 것이다. 그는 거대 야당 일원으로 지금도 국회에서 시장 억누르기에 열심이다.
KO패 당한 것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엉터리 설계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실패를 시장 실패로 몰아가며 시장을 한껏 때렸던 부동산 대책의 결과는 어땠나. 증세, 과속 복지, 재정중독증의 공공지출, 편향된 고용·노동정책까지 경제 분야가 다 그랬다. 정권 잡아 공직 꿰찬 ‘어공’들은 직업공무원인 ‘늘공’을 다잡으며 큰 정부 행보, 규제 입법, 간섭 행정에 거침이 없었다. 권부의 간택권에 늘공은 고개 숙이게 돼 있다. 시장에 대한 간섭·통제는 낡은 좌파의 보편 기질이지만, 심했다. 제압 상대로 여기는 시각 이면에는 종종 적개심도 보였다.
이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자. 정부와 시장은 적인가, 친구인가. 이를 정치와 기업으로 치환하면 또 어떻게 되나. 대통령이 바뀌니 구호나 말부터 확 바뀌었다. 물론 좌우 정파 어디도 시장을 적이라고 한 곳은 전에도 없었다. 속내는 몰라도 좌파도 ‘시장친화’ ‘기업 프렌들리’를 종종 외쳤다. 이런 대목에서도 위장전술인가. 아울러 주목되는 것은 ‘시장 우선’을 내세운 자칭 우파 정권도 말과 실제 행보는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가령 동반성장·상생 구호가 이명박 정부 때 나왔고, 공정거래위원회·고용노동부는 보수 표방 정부 때도 거칠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을 적대시해선 당장의 불황 극복은 물론 경제적 번영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자리, 투자, 소비, 복지재원의 세수부터 우리 경제가 목을 매는 수출·교역까지 모두 정부가 시장을 친구로 여길 때 활성화된다. 낡은 이념을 시장에 강요하는 것, 편향된 시각과 잣대로 시장을 뜯어고치겠다는 만용은 어김없이 부작용을 불렀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 시장도 만능은 아니다. 학계·예술·종교계까지 인간 사회에 완전한 곳은 없다. 시장의 실패, 시장의 한계도 이전부터 있었다. 완전하다면 경제 부처도, 시장 질서유지 기관도 존재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시장은 인류가 오랜 역사로 경험하고 적응해온 최선의 발전·조달·절약·배분·혁신유발 시스템이다. 적으로 여겨선 안 된다. 극빈 북한의 세습 절대권력이 이 시대에도 버티는 것도 결국 장마당이라는 시장 시스템을 용인하기에 가능할 것이다. 계획경제로는 만성적 물자 부족에 이중가격·암거래, 소수 특권층과 기층민의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하지만 수요·공급 원리 기반의 장마당은 최소한의 생필품 정도는 조달해준다.
지난 정부는 반면교사라 치고, 윤석열 정부는 진정 시장을 친구로 여기고 있을까. 정색하며 ‘자유’ ‘시장’을 외치며 ‘대한민국 영업사원’을 자임하는 대통령의 언어를 보면 의지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적 전통이 된 규제행정에선 아직 변혁에 실감이 잘 안 난다.
정책 성과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고용부·공정위·금융위원회가 아주 잘해야 한다. 이들 부처 활동에 기업과 시민의 체감 성과가 달렸다. 세 부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잘 알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중요한 것도 말할 필요 없지만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판에선 운신의 폭이 제한된다. 산업부·중기부는 ‘기업 앞잡이’ 소리를 자주 들을수록 이 정부에선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 축소다. 불요불급한 자산매각을 포함해 책임경영 차원의 대대적 민영화는 정부가 시장을 친구로 여긴다는 확실한 메시지가 된다. 셋째, 일선 늘공들에게 대통령 메시지를 수시로 전하고, 그렇게 움직이게 해야 한다. 대통령 홀로 연설 잘한다고 정부와 시장이 동반자가 되기는 어렵다.
우측 깜빡이 넣고 좌회전한다는 비판 듣지 않으려면 1년에 한 번쯤은 정부 밖 기관에 의뢰해 정책 점검도 받기 바란다. 평가모델, 진단방식 같은 요란한 기준도 필요 없다. 시장을 대등한 동반자로 대하는지만 보면 된다. 겉만 보면 한국에선 정치와 정부가 기업과 시장을 억누르며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업과 정치의 싸움에서도 정치가 못 이기는 시대가 됐다.
KO패 당한 것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엉터리 설계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실패를 시장 실패로 몰아가며 시장을 한껏 때렸던 부동산 대책의 결과는 어땠나. 증세, 과속 복지, 재정중독증의 공공지출, 편향된 고용·노동정책까지 경제 분야가 다 그랬다. 정권 잡아 공직 꿰찬 ‘어공’들은 직업공무원인 ‘늘공’을 다잡으며 큰 정부 행보, 규제 입법, 간섭 행정에 거침이 없었다. 권부의 간택권에 늘공은 고개 숙이게 돼 있다. 시장에 대한 간섭·통제는 낡은 좌파의 보편 기질이지만, 심했다. 제압 상대로 여기는 시각 이면에는 종종 적개심도 보였다.
이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자. 정부와 시장은 적인가, 친구인가. 이를 정치와 기업으로 치환하면 또 어떻게 되나. 대통령이 바뀌니 구호나 말부터 확 바뀌었다. 물론 좌우 정파 어디도 시장을 적이라고 한 곳은 전에도 없었다. 속내는 몰라도 좌파도 ‘시장친화’ ‘기업 프렌들리’를 종종 외쳤다. 이런 대목에서도 위장전술인가. 아울러 주목되는 것은 ‘시장 우선’을 내세운 자칭 우파 정권도 말과 실제 행보는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가령 동반성장·상생 구호가 이명박 정부 때 나왔고, 공정거래위원회·고용노동부는 보수 표방 정부 때도 거칠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을 적대시해선 당장의 불황 극복은 물론 경제적 번영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자리, 투자, 소비, 복지재원의 세수부터 우리 경제가 목을 매는 수출·교역까지 모두 정부가 시장을 친구로 여길 때 활성화된다. 낡은 이념을 시장에 강요하는 것, 편향된 시각과 잣대로 시장을 뜯어고치겠다는 만용은 어김없이 부작용을 불렀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 시장도 만능은 아니다. 학계·예술·종교계까지 인간 사회에 완전한 곳은 없다. 시장의 실패, 시장의 한계도 이전부터 있었다. 완전하다면 경제 부처도, 시장 질서유지 기관도 존재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시장은 인류가 오랜 역사로 경험하고 적응해온 최선의 발전·조달·절약·배분·혁신유발 시스템이다. 적으로 여겨선 안 된다. 극빈 북한의 세습 절대권력이 이 시대에도 버티는 것도 결국 장마당이라는 시장 시스템을 용인하기에 가능할 것이다. 계획경제로는 만성적 물자 부족에 이중가격·암거래, 소수 특권층과 기층민의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하지만 수요·공급 원리 기반의 장마당은 최소한의 생필품 정도는 조달해준다.
지난 정부는 반면교사라 치고, 윤석열 정부는 진정 시장을 친구로 여기고 있을까. 정색하며 ‘자유’ ‘시장’을 외치며 ‘대한민국 영업사원’을 자임하는 대통령의 언어를 보면 의지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적 전통이 된 규제행정에선 아직 변혁에 실감이 잘 안 난다.
정책 성과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고용부·공정위·금융위원회가 아주 잘해야 한다. 이들 부처 활동에 기업과 시민의 체감 성과가 달렸다. 세 부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잘 알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중요한 것도 말할 필요 없지만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판에선 운신의 폭이 제한된다. 산업부·중기부는 ‘기업 앞잡이’ 소리를 자주 들을수록 이 정부에선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 축소다. 불요불급한 자산매각을 포함해 책임경영 차원의 대대적 민영화는 정부가 시장을 친구로 여긴다는 확실한 메시지가 된다. 셋째, 일선 늘공들에게 대통령 메시지를 수시로 전하고, 그렇게 움직이게 해야 한다. 대통령 홀로 연설 잘한다고 정부와 시장이 동반자가 되기는 어렵다.
우측 깜빡이 넣고 좌회전한다는 비판 듣지 않으려면 1년에 한 번쯤은 정부 밖 기관에 의뢰해 정책 점검도 받기 바란다. 평가모델, 진단방식 같은 요란한 기준도 필요 없다. 시장을 대등한 동반자로 대하는지만 보면 된다. 겉만 보면 한국에선 정치와 정부가 기업과 시장을 억누르며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업과 정치의 싸움에서도 정치가 못 이기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