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명품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달러 강세와 보복 소비가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루이비통 매장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명품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달러 강세와 보복 소비가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루이비통 매장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명품 산업은 팬데믹 이후 ‘불패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명품은 값비싼 만큼 만족감이 큰 데다 ‘인스타그래머블’해 해외여행의 대체재로 여겨져 급성장했습니다. 한 번 올라간 소비자의 눈높이를 되돌리기도 어렵지요. 지난해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아마존, 타깃 등 유통업체들이 실적 쇼크를 냈는데도 명품이 굳건했던 이유입니다.

불패 신화는 올해도 이어질까요. 연초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장사가 없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올해는 명품업계에서도 승계 작업이 본격화되거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대거 바뀔 예정인 만큼 불확실성도 예년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변수도 있습니다. 이미 명품 구매에 익숙한, 예비 충성고객인 어린 소비자들이 자라고 있다는 겁니다.

○“내년은 성장세 둔화될 것”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명품 매출은 3530억유로(약 472조원)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습니다. 모든 산업군 중 독보적인 성장세입니다. 지난해 명품 브랜드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린 영향도 있지만,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명품 구매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실적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세계 1위 명품 기업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은 지난해 3분기 매출이 197억6000만유로(약 27조8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습니다. 시장 추정치(13% 증가)를 웃돌았지요. 구찌와 생로랑이 있는 케링 그룹도 이 기간 매출이 51억4000만유로로 14% 늘었습니다.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매출은 31억4000만유로로 24% 뛰었습니다.



지난해 말 베르나르 에르노 LVMH 회장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제치고 세계 부자 1위에 올랐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의 순자산은 20일 기준 1840억달러에 달합니다. LVMH는 이달 유럽 상장사 중 최초로 장중 시가총액이 4000억유로(약 536조원)를 넘기도 했습니다.

다만 올해는 성장 둔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 나옵니다. 베인앤컴퍼니는 올해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3~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경기와 상관없이 명품을 구매하는 상위 2%의 부자들은 여전히 명품 매출을 받쳐주지만, 팬데믹 시대 명품에 입문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경기 불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럭셔리도 불황에는 면역이 없다”며 “전쟁과 에너지 가격 인상, 경기침체 우려 속에 시장의 거품이 꺾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세대 교체의 해’인 명품업계

명품기업들은 올해 내부적으로도 바쁜 한 해를 보낼 계획입니다. 근 2~3년간 실적 잔치를 벌인 만큼 가족 회사의 경우 자녀에게 승계를 하거나, 브랜드의 ‘얼굴’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새로 임명해야 하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먼저 아르노 LVMH 회장은 최근 장녀 델핀 아르노를 크리스찬 디올의 CEO로 임명했습니다. 디올은 LVMH그룹에서 루이비통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브랜드입니다. 전 디올 CEO였던 피에트로 베카리는 루이뷔통 CEO가 됐지요.

정년이 80세인 LVMH에서 73세인 아르노 회장이 당장 퇴임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나 장녀에게 핵심 브랜드를 맡기며 가족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아르노 회장의 다른 자식들이 루이비통과 태그호이어, 불가리 및 티파니앤코 등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만큼 승계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프라다도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을 쌓고 있습니다. 1978년부터 프라다를 키워왔던, 창업자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와 남편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최근 공동 CEO 직책을 내려놓고 LVMH 출신의 안드레아 게라 CEO를 선임했습니다. 그들의 아들인 ‘4세대 승계자’ 로렌조 베르텔리의 승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로렌조는 34세로 2017년 프라다에 입사해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판단일 겁니다.

구찌와 루이비통, 톰포드 등은 올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매 시즌마다 브랜드의 디자인과 콘셉트를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브랜드의 평판과 매출을 좌지우지하지요. 구찌에서는 구찌를 젊은 층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탈바꿈한 알렉산드로 미켈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7년 만에 떠나게 됐습니다. 미켈레는 2015년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후 ‘디오니소스백’ 등을 선보여 브랜드 매출을 세 배로 불린 인물입니다.

루이비통은 2021년 사망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질 아블로의 후임자를 아직 찾고 있습니다. 톰포드는 지난해 에스티로더에 인수된 만큼 향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프라다 매장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프라다 매장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어린이가 명품의 미래?

장기적으로 명품 시장의 앞날은 밝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젊은 명품 소비자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반 세기 이상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고객들이지요.

명품을 처음 사는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베인앤컴퍼니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에서도 Z세대들은 밀레니얼 세대보다 3~5년 빠른 15세 전후에 명품을 처음 구입한다고 합니다. 소셜 미디어와 명품 중고거래 사이트의 활성화 등이 영향을 미치지요.

2010~2020년 사이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알파 세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명품에 친숙합니다. 가방 등 고가의 주력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신발과 액세서리, 의류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보고서는 알파 세대와 Z세대가 2030년까지 전체 명품 시장에서 3분의 1을 담당하는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 알파 세대를 모두 합치면 2030년에는 세계 명품 구매의 80%까지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