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좀비기업 설치고, 한탕주의 만연…초저금리가 모든 문제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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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616쪽|3만3000원
금융위기 내다 본 챈슬러의 신간
저금리로 돈 풀리자 '돈놓고 돈먹기' 만연
유례없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등장
주식·부동산·가상화폐 모든 자산에 거품
물가상승 목표 지키려는 압박감도 한몫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616쪽|3만3000원
금융위기 내다 본 챈슬러의 신간
저금리로 돈 풀리자 '돈놓고 돈먹기' 만연
유례없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등장
주식·부동산·가상화폐 모든 자산에 거품
물가상승 목표 지키려는 압박감도 한몫
1849년 프랑스 국회의원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주제는 이자의 정당성이었다. 무정부주의자 피에르 조제프 푸르동은 “이자는 도둑질”이라고 했다. 이자는 투자를 지연시키고, 고용을 감소시키며, 사회적으로 부당하다고 했다. 그에게 금리는 낮으면 낮을수록 좋았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신봉한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자는 상호 서비스 교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주장했다. 프루동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 대출도, 저축도 사라져 재앙이 닥칠 거라고 경고했다.
그 후 약 150년 동안 바스티아의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상황이 반전됐다. <금리의 역습>은 이렇게 서술한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자가 도둑질이라고 했던)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의 혁명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5000년 역사상 유례없는 최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결과는 프루동의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무상 대출에 대한 (이자가 정당한 보상이라고 했던) 바스티아의 암울한 예측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을 비판하는 이 책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출간된 뒤 화제의 도서로 떠올랐다. 한창 물가가 치솟고,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들을 때였다. 저자의 이름값도 한몫했다. 책을 쓴 에드워드 챈슬러는 금융 역사 저술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를 나와 1990년대 초반부터 2014년까지 투자 회사에서 일했다. 위기를 예견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1999년 <금융 투기의 역사>를 펴낸 후 닷컴 버블이 터졌고, 2005년 <신용 붕괴의 시간?(Crunch-Time for Credit?)>을 펴내고 약 2년 뒤 금융위기가 덮쳤다.
책은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모두 저금리에서 찾는다. 저금리로 인해 좀비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도 그만큼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금융 불안정도 커졌다. 주식·부동산·암호화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자산에 거품이 끼고, 투기적 거래가 늘어난 탓이다. 불평등 심화, 투자 부진, 낮은 생산성, 부채 급증 등도 저금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며 ‘돈 놓고 돈 먹기’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인데 누가 생산적인 일에 뛰어들겠느냐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왜 초저금리를 고수할까. 저자는 ‘물가안정 목표제’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연 2% 수준의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기준금리를 정하는 통화정책이다. 1990년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처음 도입했다. 이후 1991년 캐나다, 1992년 영국, 1998년 한국, 2012년 미국 등으로 확산했다. 저자는 “세계 시민을 실험용 쥐로 취급하는 대규모 실시간 밀그램 실험”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근거가 부족한 이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면서 중앙은행들이 온갖 부작용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견해를 따른다. ‘경기침체는 필요악’이라는 입장이다. 경기침체를 저금리로 맞설 것이 아니라 좀비 기업 등 비효율을 제거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말의 진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격한 주장이다. 대규모 실업과 파산,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거품 경제만큼이나 해롭다. ‘제2의 IMF 사태’가 터질 위기인데 이를 기회로 삼자고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적 분석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그 근본 원인은 파고들지 않는다. 사실 미국 장기금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계속해서 내리막을 걸었다. 세계 경제의 빠른 성장이 일단락되기도 했고, 세계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저축을 늘렸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인구가 늘어난 것도 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런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을 중앙은행 탓으로 돌린다. 그 밖에도 저금리가 투자 부진을 불러왔다고 하는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하이에크가 생각한 세상에서 화폐 발행 주체는 민간 은행”이라며 “암호화폐의 도래는 하이에크의 비전을 실현할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반(反)중앙은행적 입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신봉한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자는 상호 서비스 교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주장했다. 프루동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 대출도, 저축도 사라져 재앙이 닥칠 거라고 경고했다.
그 후 약 150년 동안 바스티아의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상황이 반전됐다. <금리의 역습>은 이렇게 서술한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자가 도둑질이라고 했던)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의 혁명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5000년 역사상 유례없는 최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결과는 프루동의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무상 대출에 대한 (이자가 정당한 보상이라고 했던) 바스티아의 암울한 예측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을 비판하는 이 책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출간된 뒤 화제의 도서로 떠올랐다. 한창 물가가 치솟고,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을 들을 때였다. 저자의 이름값도 한몫했다. 책을 쓴 에드워드 챈슬러는 금융 역사 저술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를 나와 1990년대 초반부터 2014년까지 투자 회사에서 일했다. 위기를 예견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1999년 <금융 투기의 역사>를 펴낸 후 닷컴 버블이 터졌고, 2005년 <신용 붕괴의 시간?(Crunch-Time for Credit?)>을 펴내고 약 2년 뒤 금융위기가 덮쳤다.
책은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모두 저금리에서 찾는다. 저금리로 인해 좀비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도 그만큼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금융 불안정도 커졌다. 주식·부동산·암호화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자산에 거품이 끼고, 투기적 거래가 늘어난 탓이다. 불평등 심화, 투자 부진, 낮은 생산성, 부채 급증 등도 저금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에 거품이 잔뜩 끼며 ‘돈 놓고 돈 먹기’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인데 누가 생산적인 일에 뛰어들겠느냐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왜 초저금리를 고수할까. 저자는 ‘물가안정 목표제’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연 2% 수준의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기준금리를 정하는 통화정책이다. 1990년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처음 도입했다. 이후 1991년 캐나다, 1992년 영국, 1998년 한국, 2012년 미국 등으로 확산했다. 저자는 “세계 시민을 실험용 쥐로 취급하는 대규모 실시간 밀그램 실험”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정적이다. 근거가 부족한 이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면서 중앙은행들이 온갖 부작용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견해를 따른다. ‘경기침체는 필요악’이라는 입장이다. 경기침체를 저금리로 맞설 것이 아니라 좀비 기업 등 비효율을 제거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말의 진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격한 주장이다. 대규모 실업과 파산,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거품 경제만큼이나 해롭다. ‘제2의 IMF 사태’가 터질 위기인데 이를 기회로 삼자고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제적 분석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그 근본 원인은 파고들지 않는다. 사실 미국 장기금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계속해서 내리막을 걸었다. 세계 경제의 빠른 성장이 일단락되기도 했고, 세계 각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저축을 늘렸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인구가 늘어난 것도 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런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을 중앙은행 탓으로 돌린다. 그 밖에도 저금리가 투자 부진을 불러왔다고 하는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하이에크가 생각한 세상에서 화폐 발행 주체는 민간 은행”이라며 “암호화폐의 도래는 하이에크의 비전을 실현할 잠재력이 있다”고 했다. 반(反)중앙은행적 입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