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시민들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 앞을 지나고 있다.   임대철 기자
24일 시민들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 앞을 지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 부동산 중개사무소는 요즘 두 부류로 나뉜다.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해당 매물은 절대 중개하지 않는 부동산. 다른 한편은 이른바 ‘빌라왕’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고 악성 매물을 다른 세입자에게 떠넘기는 부동산이다.화곡동 문제의 부동산은 후자에 속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세 가능’이란 문구와 함께 악성 물건 소유주의 매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거래를 꺼리는 ‘화곡동 오피스텔왕’ A씨의 매물도 네 건 가지고 있고, 이 중 하나를 기자에게 소개해줬다. 인근 B부동산 중개인은 “A씨 매물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다수 나왔다”며 “수수료에 혹해 문제 있는 물건을 중개하고 있는 부동산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단독] "LH전세는 돈 안떼여요"…중개소와 결탁해 깡통전세 폭탄 돌리기

화곡동에서 활개 친 ‘오피스텔왕’

24일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A씨는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과 화곡역 사이 오피스텔과 빌라를 2020년부터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화곡동의 한 오피스텔은 36가구 중 11가구가 그의 소유였다. 인근 빌라 1000여 가구의 소유주를 무작위로 확인한 결과 30여 채가 그의 소유였다. 화곡역 인근까지 범위를 넓히면 최소 200여 채가 될 것이라는 게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는 다른 빌라왕처럼 전세금을 매매가보다 높게 받아 적은 현금으로 여러 채를 보유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세입자 만기가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발생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오피스텔·빌라 가격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으면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으로 수억원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세입자가 연락해도 잘 되지 않은 시기도 작년부터다. 임차 기간이 지났지만 집을 빼지 못한 피해자가 여럿 나왔다. 피해자 박모씨는 “전세 계약 만료 후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8개월 이상 이사를 가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박씨는 계약했던 부동산을 찾았지만 “A씨 소유의 집들에 문제가 생겨 보증금을 당장 돌려받긴 힘들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한 세입자는 이달 초 계약 기간이 만료됐지만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집주인과 연락이 잘 안되고 있다”며 “3월까지 연락이 안될 경우 주택임차권 등기를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임차권 등기란 세입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 전세보증보험을 청구하는 절차 중 하나다. 집주인과 연락이 안돼 집수리를 자비로 한 사례도 많다. 세입자 최모씨는 “입주 후 자세히 보니 변기가 망가졌고 세탁기 호스 역시 없었다”며 “50만원을 들여 자비로 수리했다”고 했다.

버젓이 거래되는 악성 매물

피해 사례가 속출하는데도 이날 기준 A씨의 매물은 몇몇 부동산 등을 통해 버젓이 거래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인근에선 부동산 중개업소와 결탁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돈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20~30대나 신혼부부를 타깃으로 LH 전세임대 제도를 통해 A씨 매물을 잡을 것을 적극 권하고 있다. 이자율이 연 2%대로 낮은 데다 LH가 계약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돈을 떼일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LH 전세임대 제도는 세입자가 전세임대를 신청하면 LH의 대리인(법무사)이 권리 분석 등을 한 뒤 집주인과 직접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보증금이 세입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건 맞지만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일 경우 최소 수개월에 달하는 반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LH 전세 제도는 악성 임대인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부실하다”며 “기준을 강화해 악성 임대인이 LH 자금을 폭탄 돌리기에 쓸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세입자들과의 연락은 대리인 등을 통해서 하고 있다”며 “보증금 반환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장강호/구교범/안정훈/오유림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