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달걀 등 4000종 10분 만에 분석…남양주 도매상 확 바꿨다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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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 콩, 고기, 소금, 순대…. 식재료는 어떤 경로로 식탁에 오를까요? 공장에서 생산된 여러 물품은 몸속 혈관과도 같은 물류망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 과정의 숨은 공신이 도매상 역할을 하는 중소 식자재 업체와 물류센터입니다. 도심지 외곽 지역에 위치한 이들은 50조원 규모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의 70%를 차지하지만, 그간 디지털 자동화와 거리가 가장 먼 업계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의 힘에 의존하던 현장을 바꾼 것은 스타트업의 기술이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디지털 전환이 시작된 경기도 남양주의 식자재 물류센터를 직접 찾았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시스템 기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체계화에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지게차가 분주히 오갑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주황색 지게차는 갖가지 종류의 물품을 창고에서 트럭으로 운반합니다. 공터를 둘러싼 창고는 대부분 냉동 창고와 냉장창고입니다. 총 17개로, 도매업체 중에선 큰 규모로 분류됩니다. 냉장창고는 양파와 같은 기본적인 식자재부터 달걀, 플레인요거트 등 갖가지 품목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냉동 창고에선 돈까스나 치킨 가라아게 등 식당 수요가 높은 식자재들이 쉴새없이 출하되고 있었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취급 품목은 총 4000개 정도”라며 “서울에 위치한 뷔페와 한식당 등이 주요 고객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은 거대한 미개척 분야로 묘사됩니다. 사업자등록증 기준 2만 개 상당의 중소 식품 도매상이 저마다의 영업과 노동력을 투입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등 10개 내외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 공략을 위해 힘을 쓰고 있지만, 침투율은 20~30% 상당에 그치고 있습니다. 급식과 외식업 식자재를 같이 취급하는 대기업마저도 조단위 매출액의 상당수가 캡티브 마켓(계열사 내부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중소 도매상들의 영업 실적은 노력하기 나름인 셈입니다. 배송 기사를 합쳐 60명 정도가 근무하는 다봄푸드는 지난해에만 5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공터 좌측에 위치한 건물 2층에 들어서자, 수십 개 박스가 쌓인 창고 맞은편에 작은 사무실이 나타났습니다. 다봄푸드의 직원들은 엑셀 작업이 주 업무인 다른 도매상과는 다소 다른 프로그램을 만집니다. 기윤진 다봄푸드 부장은 스타트업 마켓보로가 만든 ‘마켓봄’을 모니터 화면에 띄웠습니다. 마켓봄은 식자재 유통을 관리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입니다. 품목 수·발주와 재고 관리 등이 핵심 기능입니다.
기 부장은 “식자재 비즈니스의 핵심은 매입 경쟁력”이라며 “거래처와 매입 가격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는지가 업체 실적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봄푸드 관리자급 직원의 하루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살피는 데이터는 미수금 현황입니다. 마켓봄에서 거래처와 순매출액별로 매출액과 거래 잔액 등을 확인합니다. 이후엔 품목 출하 데이터와 마진율을 살핍니다. 상품별로, 일자별로 정렬 기준을 바꿔가면서 어떤 물건을 더 사고 덜 팔아야 하는지 알아보는는 것입니다. 재고 관리도 필수입니다. 품목을 빼거나 더하는 것도 이런 과정 중에 결정됩니다.
디지털 플랫폼이 생기기 전엔 이런 작업을 ‘감’에 의존했습니다. “3~4만원이 넘어가는 식자재 위주로 100여개 품목을 매일 조사하면 재고의 80% 상당은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정확도는 떨어졌습니다. “엑셀을 쓰면 그나마 다행이고, 화이트보드에 검은 매직으로 표를 그려 작업하는 업체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방식을 바꾸려는 대표는 적었습니다. “거래처 현황 정도야 ‘내 머리에 다 있다’는 도매상들의 기조” 때문이었습니다. 마켓봄 역시 초창기 확장에 고전했습니다. 마켓봄의 정식 앱이 나온 것은 2019년 하반기입니다. 당시 마켓보로는 임사성 대표와 영업팀 7명이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도매상을 쫓아다니며 일일이 대면 영업에 나서야 했습니다. 상인들에게 프로그램을 쓰는 법을 하나하나 알리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2021년부터입니다. 지난해 주문관리, 이익률 관리 등 맞춤 설정을 고도화한 ‘마켓봄 프로’를 출시하며 고객사 수를 600개까지 늘렸습니다. 올해는 2000개까지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도입으로 찾아온 변화는 관리 시간 단축입니다. 기존 다봄푸드 납품처는 500개 상당이었습니다. 숙련된 관리자가 엑셀 작업을 통해 품목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간은 매일 1시간 정도입니다. 현재는 10분 정도가 걸립니다. 주문관리, 매입관리, 단가 및 재고 관리 등의 탭을 클릭하는 것이 곧 정리입니다. 마켓봄과 함께 제공되는 온라인 식자재 매칭 서비스 ‘식봄’도 역할을 했습니다. 웹 상으로 납품처를 이어주는 시스템이 따라붙으며, 다봄푸드 거래처는 1년 만에 2000개까지 늘었습니다. 매출액은 약 2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편의성이 커도, 사용자가 적으면 의미는 없습니다. 장애물은 역시 도매상들의 보수적 ‘관성’입니다. 스타트업 마켓보로에게 중소 도매상의 90%는 잠재 고객이자 앞으로의 공략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이를 위해 마켓보로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서비스는 빅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예측 기능입니다. 신설 보직인 최고데이터책임자(CDO)가 관련 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는 “마켓보로 최종 사업 목표는 단순한 식자재 SaaS나 오픈마켓 운영이 아닌, 데이터로 식자재 유통업 구성원들 ‘페인 포인트(불편 지점)’를 해소하는 데 있다”며 “식자재별 현황을 한눈에 살피는 대시보드 고도화, 사업 리스크를 알릴 수 있는 기능을 우선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참 한 가지 더
강진 마켓보로 CDO "데이터 기반 '식자재 지수' 만들겠다" 마켓보로는 최근 강진 신임 CDO를 영입하고 CEO 직속 ‘데이터&AI 테크실(데이터실)’ 조직을 신설해 10명을 편제했습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와는 별개로 실 산하에 데이터 엔지니어링팀과 데이터사이언스팀 2개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수천 개의 거래 업체 현황을 살필 대시보드와 미수금이 많은 거래처, 이익률이 낮은 거래처나 품목 등을 자동으로 파악하는 알람 기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오는 3월 출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강 CDO는 판교에선 잔뼈가 굵은 데이터 분석가입니다. 2002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만들다가, 네이버 검색서버랩으로 이직하며 데이터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딱딱한 제조업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그는 “네이버가 지금처럼 크지 않을 때였는데, 느슨한 듯 각자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 홀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소회했습니다. 사용자가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최적의 데이터를 정렬시켜주는 것이 그의 첫 업무였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검색, 이미지 검색 서비스 등을 개발하며 다뤘던 데이터가 약 10억 건”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SK플래닛에서 티맵 장소검색,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검색추천 모델링 담당을 거쳤습니다.
“조그만 카카오 데이터 조직이 거대해지는 것을 보고 새 도전 기회를 찾았다”는 그는 스타트업인 마켓보로를 새 직장으로 택했습니다. 식자재 SaaS 서비스가 “아직 앞 단계”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CDO 합류와 동시에 기획된 대시보드 고도화 작업은 “유통사별로 어떤 물건이 잘 팔리고 안 팔리는 지 등 직접 숫자를 읽어가며 파악했던 요소를 정리해 주는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누적 거래액 3조원을 바탕으로 쌓은 데이터가 기반입니다. 그는 “일단 데이터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일반 개발자들이 익혀온 기술이나 철학은 실무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며 “빠른 조직개편이 장점인 스타트업에서 CDO 직책 신설은 ‘사업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데이터실은 내년까지 20명 규모로 인력을 늘릴 예정입니다.
‘식자재 지수’를 개발하는 것도 주요 목표입니다. 식자재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일은 도매상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업력이 긴 도매상은 이에 따라 출하 가격을 조절해 실적을 방어하는 노하우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강 CDO는 “코스피 지수처럼 전반적인 시장 동향을 보여줄 수도 있고, 개별 식자재 항목을 계절별로 분석해 등락을 예측하는 기능도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 4분기 이후 개발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사람의 힘에 의존하던 현장을 바꾼 것은 스타트업의 기술이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디지털 전환이 시작된 경기도 남양주의 식자재 물류센터를 직접 찾았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시스템 기반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체계화에 있었습니다.
식자재 도매상도 'SaaS' 쓰는 시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은 식자재 도매업체인 ‘다봄푸드’가 위치한 곳입니다. 한적한 외곽도로를 지나자, 흰색 트럭이 오가는 2000평 상당 물류센터 부지가 나타났습니다. 입구로 진입하자 드러난 넓은 공터에선 작업자들이 식용유 박스 분류 작업에 한창이었습니다. 테이프와 검은색 비닐이 즐비하게 늘어진 이곳에선 택배가 오갈 때 내용물이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려 이런 작업을 자주 벌인다고 합니다.한쪽에서는 지게차가 분주히 오갑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주황색 지게차는 갖가지 종류의 물품을 창고에서 트럭으로 운반합니다. 공터를 둘러싼 창고는 대부분 냉동 창고와 냉장창고입니다. 총 17개로, 도매업체 중에선 큰 규모로 분류됩니다. 냉장창고는 양파와 같은 기본적인 식자재부터 달걀, 플레인요거트 등 갖가지 품목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냉동 창고에선 돈까스나 치킨 가라아게 등 식당 수요가 높은 식자재들이 쉴새없이 출하되고 있었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취급 품목은 총 4000개 정도”라며 “서울에 위치한 뷔페와 한식당 등이 주요 고객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국내 식자재 유통 시장은 거대한 미개척 분야로 묘사됩니다. 사업자등록증 기준 2만 개 상당의 중소 식품 도매상이 저마다의 영업과 노동력을 투입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삼성웰스토리, 현대그린푸드 등 10개 내외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 공략을 위해 힘을 쓰고 있지만, 침투율은 20~30% 상당에 그치고 있습니다. 급식과 외식업 식자재를 같이 취급하는 대기업마저도 조단위 매출액의 상당수가 캡티브 마켓(계열사 내부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중소 도매상들의 영업 실적은 노력하기 나름인 셈입니다. 배송 기사를 합쳐 60명 정도가 근무하는 다봄푸드는 지난해에만 5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공터 좌측에 위치한 건물 2층에 들어서자, 수십 개 박스가 쌓인 창고 맞은편에 작은 사무실이 나타났습니다. 다봄푸드의 직원들은 엑셀 작업이 주 업무인 다른 도매상과는 다소 다른 프로그램을 만집니다. 기윤진 다봄푸드 부장은 스타트업 마켓보로가 만든 ‘마켓봄’을 모니터 화면에 띄웠습니다. 마켓봄은 식자재 유통을 관리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입니다. 품목 수·발주와 재고 관리 등이 핵심 기능입니다.
기 부장은 “식자재 비즈니스의 핵심은 매입 경쟁력”이라며 “거래처와 매입 가격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는지가 업체 실적을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봄푸드 관리자급 직원의 하루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살피는 데이터는 미수금 현황입니다. 마켓봄에서 거래처와 순매출액별로 매출액과 거래 잔액 등을 확인합니다. 이후엔 품목 출하 데이터와 마진율을 살핍니다. 상품별로, 일자별로 정렬 기준을 바꿔가면서 어떤 물건을 더 사고 덜 팔아야 하는지 알아보는는 것입니다. 재고 관리도 필수입니다. 품목을 빼거나 더하는 것도 이런 과정 중에 결정됩니다.
'감' 보다 데이터?…거래처 2000개 늘었다
기 부장이 지난 5일 ‘미수/미지급 현황’ 탭을 켰습니다. ‘주문관리’를 누르고 회사명과 조회 기간, 거래처 구분과 영업 담당 등을 입력하자 8000건이 넘는 거래처 코드데이터가 나타났습니다. 거래처명과 이월 잔액, 순 매출금액과 입금금액 등 품목이 오갈 때 필수적으로 기입되는 항목들입니다. 그는 ‘55.41%’ ‘-16.5%’ 등 거래처별 이익률을 누르며 “매출과 매입, 배송 담당 등 필터를 걸어 분류별로 데이터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디지털 플랫폼이 생기기 전엔 이런 작업을 ‘감’에 의존했습니다. “3~4만원이 넘어가는 식자재 위주로 100여개 품목을 매일 조사하면 재고의 80% 상당은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정확도는 떨어졌습니다. “엑셀을 쓰면 그나마 다행이고, 화이트보드에 검은 매직으로 표를 그려 작업하는 업체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방식을 바꾸려는 대표는 적었습니다. “거래처 현황 정도야 ‘내 머리에 다 있다’는 도매상들의 기조” 때문이었습니다. 마켓봄 역시 초창기 확장에 고전했습니다. 마켓봄의 정식 앱이 나온 것은 2019년 하반기입니다. 당시 마켓보로는 임사성 대표와 영업팀 7명이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의 도매상을 쫓아다니며 일일이 대면 영업에 나서야 했습니다. 상인들에게 프로그램을 쓰는 법을 하나하나 알리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2021년부터입니다. 지난해 주문관리, 이익률 관리 등 맞춤 설정을 고도화한 ‘마켓봄 프로’를 출시하며 고객사 수를 600개까지 늘렸습니다. 올해는 2000개까지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도입으로 찾아온 변화는 관리 시간 단축입니다. 기존 다봄푸드 납품처는 500개 상당이었습니다. 숙련된 관리자가 엑셀 작업을 통해 품목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간은 매일 1시간 정도입니다. 현재는 10분 정도가 걸립니다. 주문관리, 매입관리, 단가 및 재고 관리 등의 탭을 클릭하는 것이 곧 정리입니다. 마켓봄과 함께 제공되는 온라인 식자재 매칭 서비스 ‘식봄’도 역할을 했습니다. 웹 상으로 납품처를 이어주는 시스템이 따라붙으며, 다봄푸드 거래처는 1년 만에 2000개까지 늘었습니다. 매출액은 약 2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편의성이 커도, 사용자가 적으면 의미는 없습니다. 장애물은 역시 도매상들의 보수적 ‘관성’입니다. 스타트업 마켓보로에게 중소 도매상의 90%는 잠재 고객이자 앞으로의 공략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이를 위해 마켓보로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서비스는 빅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예측 기능입니다. 신설 보직인 최고데이터책임자(CDO)가 관련 연구를 이끌고 있습니다. 임사성 마켓보로 대표는 “마켓보로 최종 사업 목표는 단순한 식자재 SaaS나 오픈마켓 운영이 아닌, 데이터로 식자재 유통업 구성원들 ‘페인 포인트(불편 지점)’를 해소하는 데 있다”며 “식자재별 현황을 한눈에 살피는 대시보드 고도화, 사업 리스크를 알릴 수 있는 기능을 우선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참 한 가지 더
강진 마켓보로 CDO "데이터 기반 '식자재 지수' 만들겠다" 마켓보로는 최근 강진 신임 CDO를 영입하고 CEO 직속 ‘데이터&AI 테크실(데이터실)’ 조직을 신설해 10명을 편제했습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와는 별개로 실 산하에 데이터 엔지니어링팀과 데이터사이언스팀 2개를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수천 개의 거래 업체 현황을 살필 대시보드와 미수금이 많은 거래처, 이익률이 낮은 거래처나 품목 등을 자동으로 파악하는 알람 기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오는 3월 출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강 CDO는 판교에선 잔뼈가 굵은 데이터 분석가입니다. 2002년부터 3년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만들다가, 네이버 검색서버랩으로 이직하며 데이터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딱딱한 제조업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그는 “네이버가 지금처럼 크지 않을 때였는데, 느슨한 듯 각자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 홀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소회했습니다. 사용자가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최적의 데이터를 정렬시켜주는 것이 그의 첫 업무였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검색, 이미지 검색 서비스 등을 개발하며 다뤘던 데이터가 약 10억 건”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SK플래닛에서 티맵 장소검색,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검색추천 모델링 담당을 거쳤습니다.
“조그만 카카오 데이터 조직이 거대해지는 것을 보고 새 도전 기회를 찾았다”는 그는 스타트업인 마켓보로를 새 직장으로 택했습니다. 식자재 SaaS 서비스가 “아직 앞 단계”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CDO 합류와 동시에 기획된 대시보드 고도화 작업은 “유통사별로 어떤 물건이 잘 팔리고 안 팔리는 지 등 직접 숫자를 읽어가며 파악했던 요소를 정리해 주는 기능”이라고 했습니다. 누적 거래액 3조원을 바탕으로 쌓은 데이터가 기반입니다. 그는 “일단 데이터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일반 개발자들이 익혀온 기술이나 철학은 실무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며 “빠른 조직개편이 장점인 스타트업에서 CDO 직책 신설은 ‘사업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데이터실은 내년까지 20명 규모로 인력을 늘릴 예정입니다.
‘식자재 지수’를 개발하는 것도 주요 목표입니다. 식자재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일은 도매상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업력이 긴 도매상은 이에 따라 출하 가격을 조절해 실적을 방어하는 노하우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강 CDO는 “코스피 지수처럼 전반적인 시장 동향을 보여줄 수도 있고, 개별 식자재 항목을 계절별로 분석해 등락을 예측하는 기능도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 4분기 이후 개발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