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칼럼] 이런 친구를 얻을수만 있다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이런 주제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자신의 재주, 소유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나눔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옛글을 읽었다. “ 「내도(來道)」. 이 서재는 내 친구 ‘성중’의 거처이다. ‘내도’라는 이름은 ‘도보’(道甫)가 찾아오게 하는 방이라는 뜻으로 붙였다. -중략- 나를 위해 늘 맛좋은 술을 마련해 두었다가 흥이 날 때마다 나를 생각했고, 나를 생각할 때마다 바로 말을 보내 나를 불렀다. 그때마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문에 들어서 서로를 바라보고 손을 맞잡고서 웃었다. 서로 마주한 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책 몇 권을 들어 쓱 읽고 낡은 종이를 펼쳐 주나라 북에 쓰인 글과 한 나라 묘갈 두어 개를 어루만지노라면, 성중은 벌써 손수 향을 사르고 있다가, 두건을 젖혀 쓰고 팔뚝을 드러낸 채 앉아서 손수 차를 달여 내게 마시도록 건넸다. 온종일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다가 저물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때에는 여러 날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간 내가 다시 그리워져 바로 나를 부른 일도 있다.” 이광사(1705-1777)의 <내도재기(來道齋記)>일부이다. 성중은 김광수(1699-1770)이고 그는 당시 유명한 서화 수장가이고 부자였다. 요즘 말로 컬렉터였다. 그가 가난한 서예가 ‘도보 이광사’가 찾아오게 하는 방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참 따뜻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따뜻한 사람. 친구 이야기가 좋다. 흔히 늙으면 건강, 친구, 돈,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주변에 사람은 많고 관계는 많이 하지만, 김광수, 허균 같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라, 사실은 진정한 우정, 친구가 하나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닌가? 싶다. 무슨 모임 등 보통은 다양하고 많은 관계 연결고리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관계 넓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일 것이다. 지인과 대화를 하는 가운데 요즘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이냐고 하니, 대답은 이렇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니, 자신이 때로는 피곤하다는 것이다. 소위 인간관계 스트레스, 인간관계 피로이다. 그래서 나이도 들고 하니 넓이보다는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한 둘 친구와 자주 깊이 만나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공감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삼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은 함께, 오래 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내는 지인 단체 카톡방에 올라오는 글 중 마음이 훈훈하게 하는 글은 ‘남은 삶을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갑시다’이다. 그런 글이 올라오면 답을 한다. ‘인생 길벗이 되어 좋다’고. 김광수, 허균 같은 길벗이 있다면 어떨까.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