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토벤’의 2막에서 주인공 베토벤(카이 분)이 넘버(노래 이름) ‘용납 못해’를 부르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베토벤’의 2막에서 주인공 베토벤(카이 분)이 넘버(노래 이름) ‘용납 못해’를 부르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창작 뮤지컬의 ‘성공 방정식’은 대개 이렇다. 최고의 극작가 및 작곡가에게 스토리와 노래를 맡긴 뒤 ‘티켓 파워’ 있는 배우들을 투입하는 것이다. 해외 판권 수출에 성공한 ‘웃는 남자’와 ‘프랑켄슈타인’ 등이 그랬다.

뮤지컬 ‘베토벤’도 이 방정식을 그대로 따랐다. 인기 뮤지컬 ‘레베카’ ‘엘리자벳’ 등을 만든 ‘콤비’(미하일 쿤체, 실베스터 러베이)에게 시나리오와 작곡을 맡겼고, 뮤지컬 시장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박효신과 옥주현을 무대에 세웠다. 여기에 갈버트 매머트(연출), 김문정(음악감독), 오필영(무대 디자인) 등 뮤지컬 업계에서 알아주는 ‘꾼’들도 붙였다. 제작사(EMK뮤지컬컴퍼니)의 실력으로 보나, 제작기간(7년)으로 보나, 실패를 떠올릴 만한 요소는 없었다.

현실은 달랐다. 객석과 온라인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혹평을 내뱉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스토리엔 구멍이 숭숭 뚫렸고, 여운이 남는 노래 하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개연성 부족한 ‘러브 스토리’

뮤지컬 ‘베토벤’의 탄생은 한 장의 편지에서 비롯됐다. 제작진은 베토벤의 실제 유품 가운데 신원미상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기에 온갖 상상을 더해 베토벤과 귀족 여인 안토니 브렌타노의 러브 스토리를 그렸다.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가 아닌 ‘상처 입은 외로운 사람’으로 바라봤다.

볼거리는 충분한 편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멜로딕스 하모니 포르테 알레그로 안단테 피아노 등 여섯 명의 혼령으로 의인화해 세련된 안무로 시각화했다. 화려한 조명, 수십 명의 앙상블, 체코 프라하의 명소 카를 다리를 실감나게 재현한 세트 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토종 뮤지컬답게 ‘하드웨어’는 브로드웨이 대작에 못지않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스토리부터 개연성이 떨어진다. 남편과 세 아이를 둔 귀족부인이 도대체 왜 베토벤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득이 부족하다. 극 초반 귀족들의 파티에서 안토니가 손가락질당하는 베토벤 편을 들어주는 장면 정도만 기억하는 관객에게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져 불륜도 이겨내려 한다”는 걸 이해시키긴 역부족이다.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도 눈에 띄지 않는다. 날카롭고 예민한 베토벤만 있을 뿐이다. 청력을 잃는 베토벤의 고뇌는 청력 상실을 진단한 의사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묘사하는 정도로 그친다. 베토벤의 상처를 안토니가 어떻게 보듬어주는지, 그래서 베토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사진=한경DB
사진=한경DB

스타들의 연기력은 볼만

‘킬링 넘버’(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대표곡)도 잘 떠올려지지 않는다고 관객들은 말한다. 52개의 넘버 모두 ‘합창’ ‘운명’ 등 베토벤 곡을 편곡해 만들었다. 귀에 익은 클래식을 뮤지컬 넘버로 들을 수 있다는 건 반가운 대목이다. ‘너의 운명’ ‘매직 문(magic moon)’ 등의 넘버는 각각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 및 월광(月光·달빛)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를 빼면 베토벤 곡을 세련되게 재해석했다기보다는 기존 멜로디에 가사만 붙인 느낌이 든다.

‘베토벤’에서 관객의 기대에 들어맞은 건 딱 하나, 배우였다. 베토벤 역의 박효신·박은태·카이, 안토니 역의 조정은·옥주현·윤공주 노래와 연기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PC를 구동하는 ‘윈도’가 삐걱거리면 아무리 좋은 응용 프로그램도 제값을 못 하듯이, 배우들의 열연만으로 베토벤을 대작 반열로 끌어올리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일까. 25일 기준 인터파크 티켓에서 다음달까지 티켓 오픈된 공연 중 배우 박효신이 출연하는 회차를 제외하곤 R석(17만원)이 다 팔린 공연은 한 회도 없다.

공연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26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