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사진=신민경 기자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 사진=신민경 기자
순자산총액(AUM)이 80조원을 훌쩍 넘길 만큼 커진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역설적으로 발행 주체인 자산운용사들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ETF 시장이 커지면 운용사 입장에선 저수익성 자산 비중을 늘리는 상황이 돼, 운용수익률은 계속 낮아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국내 ETF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운용사들의 고민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2023년 자본시장 전망과 주요 이슈'를 주제로 26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ETF 확대는 주식형 공모펀드 전체의 보수율 하락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면서 이 같이 밝혔다.

펀드시장에서 ETF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ETF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했지만 순자산 규모는 전년보다 7% 증가했다. 공모펀드 내 비중 증가 추세도 빠르다. 반면 공모펀드 순자산은 283조원으로 전년 대비 29조원(9%) 감소했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보다 국내외 주식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개인들이 많아진 영향이다.

ETF 시장이 업계 핵심 먹거리로 굳어진 가운데, 김 실장은 AUM 자체를 크게 늘려 저수익성을 만회하는 해결책을 제안했다. 또 이를 위해선 운용사들의 변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해외상장 주식이나 ETF 대비 국내 상장 해외투자 ETF가 갖는 장기적 차별성과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마형 ETF와 해외파생형 등에서 나타나는 개인투자자들의 높은 회전율과 낮은 분산효과, 높은 위험성향 등을 개선해 ETF를 건전한 간접투자수단으로 정착시키는 것도 운용사들에 주어진 굵직한 과제"라고 했다.
국내 상장 해외 ETF 순자산 및 개인 해외주식 직접투자액. 자료=자본시장연구원
국내 상장 해외 ETF 순자산 및 개인 해외주식 직접투자액. 자료=자본시장연구원
사모펀드 시장에 대해선 경쟁이 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5년 진입 규제가 완화된 뒤로 사모운용사를 중심으로 많은 신생 운용사가 생겨났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수탁고가 미미해 수익구조가 취약한 운용사도 여럿인 상황이다. 김 실장은 지금처럼 자유로운 진입이 계속될 경우, 한계에 도달하는 운용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경쟁이 심해지는 과정 속에서 운용 수수료가 꾸준히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 실장은 "단기적으로는 부동산과 인프라 등 고수익 자산시장의 성장 정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경쟁이 심해질수록 운용수수료가 내리고 딜소싱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사모운용사들의 스펙트럼이 대체투자를 넘어 더 다양한 자산군과 전략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금개혁 논의도 연중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5차 재정계산에 따른 종합운용계획 수립과 국회 공적연금개혁특위를 시작으로 연금체계 전반의 구조적 개혁 논의가 시작되면, 장기적으로 연금시장 구조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김 실장은 예상했다. 그는 "공적연금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퇴직연금, 개인연금 개혁도 논의할 전망"이라며 "연금개혁은 중장기적으로 연금시장 규모와 연금 자산운용의 방식, 자산운용시장의 경쟁구조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도 자산운용사들의 순이익 둔화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작년 자산운용사들의 순자산 성장률은 전년(12%) 대비 감소한 5%를 기록했다. 특히 공모펀드 순자산은 전년보다 9% 축소해 역성장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공모펀드 시장 평균 보수율은 2019년(0.61%), 2020년(0.54%), 2022년(0.47%) 등 장기적인 하락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고수익 영역인 사모펀드 성장 둔화세도 상반기 중엔 지속될 전망"이라며 "부채원리금 상환이 크게 늘어난 가계 부문의 위험자산 투자여력이 축소된 점도 부정적"이라고 짚었다.

다만 하반기 들어선 둔화세가 완만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김 실장은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낮아진 평가가치(밸류에이션), 각국 기준금리 인상의 촉매제였던 물가상승(인플레이션) 둔화, 기관투자자들의 축적된 현금보유 규모 등 긍정적인 요인들도 많아 올해 자산운용시장 규모 성장세는 작년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