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논쟁'만 남긴 나경원 사태
“진윤 의원들이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조롱하는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있다.” 나 전 의원을 도왔던 박종희 전 의원은 지난 16일 ‘진윤’이라는 단어를 들고나왔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편을 가르는 ‘친윤’ ‘반윤’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경고하자 “저는 ‘진윤’과 ‘멀윤’으로 얘기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 전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한 지난 한 달간 집권 여당은 다시 ‘친윤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포문은 친윤계 핵심 장제원 의원이 열었다. ‘친윤을 위장한 비겁한 반윤’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나 전 의원에게 ‘반윤’ 꼬리표를 붙였다.

나 전 의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장 의원을 ‘제2의 진박감별사’로 저격하면서 자신은 “죽었다 깨도 반윤은 못 된다”고 맞섰다. 하지만 초선 의원 50명이 나 전 의원을 향해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그에게 씌워진 ‘반윤’ 이미지는 더 강해졌다. 나 전 의원이 장고 끝에 불출마를 결정한 것도 ‘반윤’ 프레임으로는 당대표 선거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지율 하락은 결정타가 됐다.

국민의힘 당권 경쟁은 지난달까지 김기현 안철수 등 유력 주자 간 ‘윤심(尹心)’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그러다 이달엔 나 전 의원에게 어떤 꼬리표를 붙일지를 놓고 진흙탕에 가까운 내홍이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전당대회에 개입한다는 부정적 인식은 강화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대표 선거에서 비전이 사라지고 자신이 얼마나 ‘친윤’인지, 윤석열 대통령과 얼마나 친한지를 과시하는 경쟁의 장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새 국면을 맞았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26일 뼈 있는 말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오로지 대통령이 나를 좋아하고 나만이 대통령과 잘할 수 있다. 이것이 정도가 지나치면 부작용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권 주자들도 이젠 ‘친윤’이라는 타이틀로 승부할 때는 지났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지, 정부와 어떻게 협력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내놓아야 선택받을 수 있다. 80만 명의 당원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