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O, CRO, CPSO?…기업들 C'X'O 직책 늘어나는 까닭은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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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레벨’의 시대입니다. 초기 스타트업도 최고경영자(CEO)를 중심으로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재무책임자(CFO) 정도는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최근엔 이를 넘어, 이름도 보직도 타사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직책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이런 현상의 배경과 이유를 짚었습니다.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최고피플사이언스책임자(CPSO), 최고수익책임자(CRO)…. 기업들이 기존에는 없었던 독특한 ‘C레벨’ 보직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겨난 직책들이다. 스타트업들은 다른 회사의 ‘리드급’ 인재를 영입할 때 스톡옵션을 주는 대신 그럴싸한 C레벨 보직을 제안하기도 한다. 직원 채용이 어려운 스타트업들 사이에선 서로의 C레벨을 공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등 일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CDO 직책은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눈에 띈다. 여행 플랫폼 업체 트립비토즈, 동영상 커머스 스타트업 인덴트코퍼레이션 등이 데이터 사업을 추진하면서 CDO 보직을 뒀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네이버 출신 박은정 최고과학책임자(CSO)를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AI 업체들은 연구개발(R&D)이 중요하고, 새로운 논문이 나오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전담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CSO는 업스테이지의 R&D 조직(홍콩지사) 인력 6명을 이끌며 논문 작업을 하고 있다.
가상인간 솔루션을 개발하는 라이언로켓은 지난해 말 제홍모 전 스트라드비젼 CTO를 최고연구책임자(CRO)로 영입했다. 근로자 성과관리 플랫폼 업체 레몬베이스는 최고피플사이언스책임자(CPSO)라는 보직을 만들기도 했다. CPSO는 근로 성과와 관련한 문헌과 사례를 연구하고 서비스에 접목하는 역할을 한다.
‘핀셋(맞춤형) 보직’으로 영업과 마케팅을 강화하는 기업들도 있다. 가상 사무공간 플랫폼 업체 오비스와 기업용 채팅 프로그램을 만드는 센드버드는 최고수익책임자(CRO) 자리를 만들었다. 이들 회사는 본사가 해외에 있고, 세계 각국에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지난해 인덴트코퍼레이션으로 영입된 김진우 CRO는 센드버드 아시아·태평양 지역 영업 전문가 출신이다.
CCO로 불리는 최고커머스책임자와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는 브랜딩과 마케팅 등을 담당한다. 무신사는 쿠팡 출신 최재영 CCO를 커머스 부문장으로 임명했고, 인플루언서 커머스 플랫폼인 마플코퍼레이션은 브랜딩 전문가인 이효진 전 플러스엑스 공동대표를 지난달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로 선임했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과 개발자 커리어 플랫폼 그렙은 최고경험책임자(CXO)를 두고 고객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UX)’을 맡기고 있다.
일각에선 벤처업계의 잦은 이직 문화가 C레벨을 늘렸다고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회사의 C레벨이나 스타트업의 조직장 개념인 리드급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선 비슷하거나 상위 보직을 제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 채용이 쉽지 않은 스타트업들은 서로 다른 회사가 한 사람을 ‘공동 고용’하기도 한다. 고급 인재가 한정된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 애드테크(광고기술) 스타트업 데이블의 하용호 CDO는 인덴트코퍼레이션 CDO 역할도 하고 있다. 두 회사는 서로 지분 관계가 없다.
기업들은 인재를 영입하면서 스톡옵션을 주는 대신 새 보직을 만들어 ‘당근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의 C레벨이 늘어나면서 비효율성이 발생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회사들도 있다.
명품 플랫폼 업체 발란은 지난해 5월 최고사업책임자(CBO) 직책을 신설했다가 2개월여 만에 없앴다. 영업 책임을 두고 혼선이 발생하면서 이뤄진 조치로 알려졌다. 유효상 유니콘 경영경제연구원장은 “새로운 형태의 C레벨은 수평적 문화 중심의 스타트업에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기에 좋은 형태”라면서도 “업무 분장이 불명확해 보이는 C레벨은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 한 가지 더
최고안전책임자의 부상과 중대재해처벌법 기업 규모가 크다고 반드시 C레벨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국내선 지난해 조직개편을 진행한 카카오처럼 그룹이나 부문의 조직장을 두고, 책임자가 필요한 영역에만 'CXO'를 따로 선임하는 형태가 다수다. 이 가운데 새롭게 주목받은 직책이 '최고안전책임자(CSO)'다.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며 산업계 관심은 'CSO가 대표이사 대신 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쏠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9호는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CSO가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사고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물산·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비롯해, 현대자동차그룹과 LG디스플레이 등도 연달아 관련 보직을 채웠다.
하지만 법 시행 1년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겨진 업체 대부분이 CSO가 아닌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의 해석상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이달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처벌 대상과 요건 등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최고피플사이언스책임자(CPSO), 최고수익책임자(CRO)…. 기업들이 기존에는 없었던 독특한 ‘C레벨’ 보직을 만들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겨난 직책들이다. 스타트업들은 다른 회사의 ‘리드급’ 인재를 영입할 때 스톡옵션을 주는 대신 그럴싸한 C레벨 보직을 제안하기도 한다. 직원 채용이 어려운 스타트업들 사이에선 서로의 C레벨을 공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신사업 책임지는 ‘맞춤형 보직’
식자재 유통 회사 마켓보로는 최근 최고데이터책임자(CDO) 직책을 신설하고, 10명 규모의 CDO 직속 ‘데이터&인공지능(AI) 테크실(데이터실)’을 꾸렸다. 초대 CDO로는 강진 전 카카오 검색서비스 셀장을 영입했다. 데이터실은 데이터 분석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최고기술책임자(CTO)와는 분리된 조직이다. 앞으로 인력을 두 배가량 늘릴 예정이다.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등 일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CDO 직책은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눈에 띈다. 여행 플랫폼 업체 트립비토즈, 동영상 커머스 스타트업 인덴트코퍼레이션 등이 데이터 사업을 추진하면서 CDO 보직을 뒀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네이버 출신 박은정 최고과학책임자(CSO)를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AI 업체들은 연구개발(R&D)이 중요하고, 새로운 논문이 나오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전담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CSO는 업스테이지의 R&D 조직(홍콩지사) 인력 6명을 이끌며 논문 작업을 하고 있다.
가상인간 솔루션을 개발하는 라이언로켓은 지난해 말 제홍모 전 스트라드비젼 CTO를 최고연구책임자(CRO)로 영입했다. 근로자 성과관리 플랫폼 업체 레몬베이스는 최고피플사이언스책임자(CPSO)라는 보직을 만들기도 했다. CPSO는 근로 성과와 관련한 문헌과 사례를 연구하고 서비스에 접목하는 역할을 한다.
‘핀셋(맞춤형) 보직’으로 영업과 마케팅을 강화하는 기업들도 있다. 가상 사무공간 플랫폼 업체 오비스와 기업용 채팅 프로그램을 만드는 센드버드는 최고수익책임자(CRO) 자리를 만들었다. 이들 회사는 본사가 해외에 있고, 세계 각국에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지난해 인덴트코퍼레이션으로 영입된 김진우 CRO는 센드버드 아시아·태평양 지역 영업 전문가 출신이다.
CCO로 불리는 최고커머스책임자와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는 브랜딩과 마케팅 등을 담당한다. 무신사는 쿠팡 출신 최재영 CCO를 커머스 부문장으로 임명했고, 인플루언서 커머스 플랫폼인 마플코퍼레이션은 브랜딩 전문가인 이효진 전 플러스엑스 공동대표를 지난달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로 선임했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과 개발자 커리어 플랫폼 그렙은 최고경험책임자(CXO)를 두고 고객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UX)’을 맡기고 있다.
‘당근’된 C레벨…업무 효율 높일까
기업들이 독특한 C레벨을 늘리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최고책임자’라는 직책을 부여해 책임성을 강화하는 게 하나의 이유다. 경찰대 출신으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에 자문역을 한 이진규 네이버 최고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태’를 수습한 뒤 인프라부문장에 선임된 고우찬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최고클라우드책임자(CCO) 등이 대표적이다.일각에선 벤처업계의 잦은 이직 문화가 C레벨을 늘렸다고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회사의 C레벨이나 스타트업의 조직장 개념인 리드급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선 비슷하거나 상위 보직을 제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 채용이 쉽지 않은 스타트업들은 서로 다른 회사가 한 사람을 ‘공동 고용’하기도 한다. 고급 인재가 한정된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 애드테크(광고기술) 스타트업 데이블의 하용호 CDO는 인덴트코퍼레이션 CDO 역할도 하고 있다. 두 회사는 서로 지분 관계가 없다.
기업들은 인재를 영입하면서 스톡옵션을 주는 대신 새 보직을 만들어 ‘당근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사의 C레벨이 늘어나면서 비효율성이 발생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회사들도 있다.
명품 플랫폼 업체 발란은 지난해 5월 최고사업책임자(CBO) 직책을 신설했다가 2개월여 만에 없앴다. 영업 책임을 두고 혼선이 발생하면서 이뤄진 조치로 알려졌다. 유효상 유니콘 경영경제연구원장은 “새로운 형태의 C레벨은 수평적 문화 중심의 스타트업에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기에 좋은 형태”라면서도 “업무 분장이 불명확해 보이는 C레벨은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 한 가지 더
최고안전책임자의 부상과 중대재해처벌법 기업 규모가 크다고 반드시 C레벨 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 국내선 지난해 조직개편을 진행한 카카오처럼 그룹이나 부문의 조직장을 두고, 책임자가 필요한 영역에만 'CXO'를 따로 선임하는 형태가 다수다. 이 가운데 새롭게 주목받은 직책이 '최고안전책임자(CSO)'다.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며 산업계 관심은 'CSO가 대표이사 대신 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쏠렸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9호는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CSO가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사고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물산·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비롯해, 현대자동차그룹과 LG디스플레이 등도 연달아 관련 보직을 채웠다.
하지만 법 시행 1년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겨진 업체 대부분이 CSO가 아닌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의 해석상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이달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처벌 대상과 요건 등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