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한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요"…서울대 공대는 지금 [박동휘의 생각 노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대 공대 '혁신 바람'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직 얼굴에 청년기의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서울대 공대 교수와 저녁을 함께 했다. 36살의 대구 사투리를 정겹게 구사하는 그가 고민을 털어놨다. “의사 하겠다는 학생을 간신히 말렸어요”
영재고 시절 받았던 장학금까지 토해 가며 의대로 전과하려는 학생이 많다더니, 그 바람이 서울대 공대에까지 부는구나 싶었다. 위로와 공감의 의미로 개탄의 말을 꺼내려는데 그 젊은 교수의 얼굴이 밝았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 지 고민해 본 적이 있냐고 질문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공대에 남겠다고 하더군요”
홍유석 교수가 지난해 공대 학장에 뽑힌 것 자체가 변화의 증거다. 그는 1946년 출범한 서울대 공대(2일 현재 6개 학부, 6개 학과로 구성) 역사상 최초의 산업공학과 출신 학장이다. 대우그룹으로 입사해 연구자로 변신한 특이한 ‘케이스’다. “기업과 대학 간 인적 융합이 한국의 미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홍 학장 취임 이후 공대는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서울대 창립 이래 처음으로 현직 교수(최장욱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가 미국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 기업인 SES의 사외이사로 취임한 일이 작년 가을에 있었는데, 홍 학장은 “선례가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반대파를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입시부터 적용된 공대 ‘광역 모집’도 서울대의 변화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공 없이 공대로 입학해 1학기 뒤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홍 학장은 “학부(과) 정원이라는 성역을 처음 깨트린 시도”라며 “전공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깨고, 사회가 요구하는 공학에 더 많은 인재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젊은 교수들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서울대 공대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다. 올해 신규 임용자 중엔 의용생체공학, 로봇지능, 스마트시티, 나노·바이오 기계공학, 핵융합 공학 등 이름조차 생소한 분야가 수두룩하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대 공대는 총 167명을 신규 임용했는데, 이들 중 임용 당시 나이가 30~44세인 교수는 96명(57%)에 달했다. 고승환 서울대 공대 연구부학장은 “10년 전만 해도 해외 유학 갔던 인재들이 귀국을 꺼렸다”며 “요즘엔 한국에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젊은 교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핵심은 인재다. 1955~1962년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국으로 건너 간 서울대 교수 218명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국을 재건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이때 도미한 교수의 대부분은 조교수 이하의 30대였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 혁신 창업이 쏟아지는 것은 교수와 학생의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어주는 테크니션 엔지니어들 덕분”이라며 “한국의 대학에선 교수와 학생이 지지고 볶으며 알아서 모든 걸 하라는 게 관행”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1월 한국은 최악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3월 이후 무려 11개월 연속 적자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성장의 종언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은 하나로 모아진다. 국가 산업정책의 부활이든, 기업가 정신의 회복이든 빠르게 변하는 기술 전쟁의 시대에 생존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재’다. 속도전으로 변한 기술 전쟁에서 이기려면 대학에서 혁신 창업이 쏟아져야 한다. 서울대 공대의 혁신에 기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영재고 시절 받았던 장학금까지 토해 가며 의대로 전과하려는 학생이 많다더니, 그 바람이 서울대 공대에까지 부는구나 싶었다. 위로와 공감의 의미로 개탄의 말을 꺼내려는데 그 젊은 교수의 얼굴이 밝았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 지 고민해 본 적이 있냐고 질문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공대에 남겠다고 하더군요”
서울대 공대에 부는 ‘혁신의 바람’
‘서울대’라는 고유명사에 담긴 말뜻은 극과 극을 오간다. 선망, 명예, 부러움의 대상일 때도 있겠으나, 변하지 않는 낡음과 고루한 특권의 온상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서울대에 대한 평가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울대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공대의 혁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홍유석 교수가 지난해 공대 학장에 뽑힌 것 자체가 변화의 증거다. 그는 1946년 출범한 서울대 공대(2일 현재 6개 학부, 6개 학과로 구성) 역사상 최초의 산업공학과 출신 학장이다. 대우그룹으로 입사해 연구자로 변신한 특이한 ‘케이스’다. “기업과 대학 간 인적 융합이 한국의 미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홍 학장 취임 이후 공대는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서울대 창립 이래 처음으로 현직 교수(최장욱 화학생물공학부 교수)가 미국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 기업인 SES의 사외이사로 취임한 일이 작년 가을에 있었는데, 홍 학장은 “선례가 없다”는 논리로 무장한 반대파를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입시부터 적용된 공대 ‘광역 모집’도 서울대의 변화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공 없이 공대로 입학해 1학기 뒤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홍 학장은 “학부(과) 정원이라는 성역을 처음 깨트린 시도”라며 “전공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깨고, 사회가 요구하는 공학에 더 많은 인재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젊은 교수들이 돌아온다
서울대 공대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 지는 신규 임용 교수에 대한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3월1일자로 임용 예정인 17명의 교수 중 16명이 조교수·부교수 등 ‘3040 세대’다. 이들 중엔 인텔(인공지능), 메타(컴퓨터 그래픽스) 등 미국 대기업에서 연구자로 활약하던 이들도 여럿 있다.젊은 교수들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서울대 공대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다. 올해 신규 임용자 중엔 의용생체공학, 로봇지능, 스마트시티, 나노·바이오 기계공학, 핵융합 공학 등 이름조차 생소한 분야가 수두룩하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대 공대는 총 167명을 신규 임용했는데, 이들 중 임용 당시 나이가 30~44세인 교수는 96명(57%)에 달했다. 고승환 서울대 공대 연구부학장은 “10년 전만 해도 해외 유학 갔던 인재들이 귀국을 꺼렸다”며 “요즘엔 한국에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젊은 교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핵심은 인재다. 1955~1962년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국으로 건너 간 서울대 교수 218명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국을 재건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이때 도미한 교수의 대부분은 조교수 이하의 30대였다.
대학의 혁신 창업이 성장 한계 돌파의 힘
미국, 유럽 굴지의 공대와 비교하면 서울대를 비롯해 국내 주요 대학 공대의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의 상당수는 국가출연연구기관의 보고용 보고서를 만드는 데로 샌다.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 혁신 창업이 쏟아지는 것은 교수와 학생의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만들어주는 테크니션 엔지니어들 덕분”이라며 “한국의 대학에선 교수와 학생이 지지고 볶으며 알아서 모든 걸 하라는 게 관행”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1월 한국은 최악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3월 이후 무려 11개월 연속 적자다.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성장의 종언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은 하나로 모아진다. 국가 산업정책의 부활이든, 기업가 정신의 회복이든 빠르게 변하는 기술 전쟁의 시대에 생존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재’다. 속도전으로 변한 기술 전쟁에서 이기려면 대학에서 혁신 창업이 쏟아져야 한다. 서울대 공대의 혁신에 기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