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몽규, 사촌 윤동주와 문학운동·안창남, 첫 국내 비행
'2월 독립운동가'에 '순국 청년'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정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일찍이 순국한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이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31일 밝혔다.

윤동주 시인 사촌 형인 송몽규 선생은 1917년 중국 용정 출생으로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백범 김구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시킬 청년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립했던 학생훈련소에 입소했다.

송 선생은 1938년 4월 윤동주 시인과 함께 문학으로 민족계몽 운동을 펼치기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 문과 학생들의 자치조직인 문우회 잡지 '문우'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 정책에도 불구하고 항일운동의 방법으로 한글 시를 문우에 수록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세계의 역사 및 문학을 연구함으로써 조선의 독립을 모색하고자 교토제국대학 사학과에 1942년 4월 입학했다.

교토에서 윤동주 등과 함께 민족정신 운동을 위해 노력했으며, 일본은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의 주동 인물로 선생과 윤동주를 함께 체포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문 소멸 유도 등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고, 세계의 동정을 얻어 조국 독립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1945년 3월 28세 나이로 옥중 순국했다.

'2월 독립운동가'에 '순국 청년'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정
안창남 선생은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1920년 8월 오구리(小栗)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1921년 3월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8월 조선인 최초로 3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다.

1922년 6월 2등 비행사 면허를 받은 선생은 비행기 '금강호'에 탑승해 그해 12월 10∼13일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고국 방문 비행을 펼쳤다.

선생의 최초 국내 비행은 조선 청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울림을 줬다고 보훈처는 밝혔다.

이후 선생은 일본으로 가 1923년 7월 1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9월 관동(關東) 대학살을 겪으면서 식민지 조선인의 울분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항공 인재 양성에 관심을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선생은 중국 국민혁명군의 반제국주의·반일 항쟁에 참여했고 독립군 비행사 양성도 모색했다.

1926년 여운형의 도움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고 있던 산시성 군벌 염석산 군(軍)의 항공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1928년 신덕영 등과 함께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 군자금을 모집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인 군대를 양성해 국내 진공 작전을 구상했다.

선생은 최양옥 등을 국내로 파견해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지휘하고 중국에서 조선인 비행사들이 항공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1930년 4월 산서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 중 기체 고장으로 인해 29세에 산화했다.

'2월 독립운동가'에 '순국 청년'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정
김필순 선생은 1878년 황해도 출생이다.

1886년 배재학당에 입학했고 1899년 제중원에 들어가 올리버 알 애비슨의 통역 및 조수로서 제중원 교재로 사용되는 서양 의학서적을 번역할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선생은 1908년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았으며, 모교와 간호원 양성소의 교수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특히 선생은 안창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그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1908년 4월 안창호와 양기탁 등이 설립한 신민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작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에 연루된 선생은 일제의 검거를 피하고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1911년 12월 중국 만주로 망명, 조선인 집단 거주지인 통화현에 정착하고 근대적 병원을 열어 조선인들을 치료했다.

선생은 1916년 8월 일제의 감시와 간섭이 날로 심해지자 통화현을 떠나 내몽고 치치하얼로 이주,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를 개원하고 의료활동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던 중 1919년 9월 순국했다.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김규식의 처남이자 김순애의 오빠이며,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의 삼촌으로서 독립운동 명문 집안의 일원이었다.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각 문학·군사·의학 분야에서 헌신하고 순국한 독립유공자라고 보훈처는 밝혔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송몽규 선생에게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안창남 선생에게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 김필순 선생에게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