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변화를 거듭합니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자칫 방향을 잃고 거리감이 생기기 쉽습니다. '딥테크' 투자의 전설,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호로위츠(a16z)가 올해 주목해야 할 기술 전망에 대한 분석을 내놨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원문을 정리해 전달해 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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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가까운 수준의 챗GPT의 상담 능력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겁니다. 핀테크 분야 인건비는 10배 줄어들 것입니다.”

챗GPT의 파급력이 산업계 다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운데 올해 금융 서비스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으로의 인력 대체가 현실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AI는 이미 음성과 텍스트, 이미지 속 정보를 자유롭게 취합하고 변환하기 시작했다. 커머스 플랫폼에선 소비자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AI 서비스가 본격 등장하고, ‘생성 AI 모델’은 3차원(3D) 모델과 캐릭터를 손쉽게 만들어내 게임업계 변화를 앞당긴다는 분석이다. 패션업체 경쟁을 부를 메타버스 플랫폼의 발달과 바이오 분야 ‘근접유도화합물’ 기술, 소형 모듈식 원자로(SMR)와 산업용 로봇 등도 주목할 분야로 꼽혔다.

핀테크 업체가 '챗GPT' 만든다

2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미국 벤처캐피털 앤드리슨호로위츠(a16z)는 최근 ‘2023 기술 전망(Big Ideas in Tech for 2023)’ 리포트를 발표했다. a16z는 2009년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투자사로 IT 분야 벤처투자의 글로벌 ‘명가’로 통한다. 에어비앤비 핀터레스트 슬랙 깃허브 인스타그램 스카이프 등 474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운용자산은 지난해 기준 280억달러(약 34조원)에 달한다. a16z는 해마다 자사 투자 파트너의 의견을 취합해 기술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는 핀테크, 바이오, 커머스 등 7개 분야의 변화를 언급했다.

핀테크 분야에선 AI가 촉발한 변화를 대표적 기대 요소로 꼽았다. 아니쉬 아차르야 a16z 핀테크팀 제너럴파트너는 “오픈AI는 핀테크와 금융 서비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신제품”이라며 “특히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자) 등급을 중심으로 기능이 제공되면 인플레이션 등 부정적 거시 경제 문제에 대응하는 균형추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로 훈련을 거듭하는 대형 언어모델 AI(LLM)에도 핀테크 업체들이 도전하게 될 것이라 내다봤다. 같은 팀의 한 파트너는 “보험금 청구나 대출 같은 수동 작업이 LLM으로 마침내 완전 자동화될 것”이라면서도 “사용자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지는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고금리 환경 속에서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마치 은행처럼 움직이는 핀테크들의 동향, 연방 정부의 복잡한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서비스 향상 등도 주목할 요소라고 했다.
오픈AI사 '챗GPT'의 메인 화면. 지난달 일일 글로벌 이용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챗GPT 홈페이지 캡처
오픈AI사 '챗GPT'의 메인 화면. 지난달 일일 글로벌 이용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챗GPT 홈페이지 캡처
‘생성 AI’는 게임 업계를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됐다. 생성 AI는 사전 학습된 지능을 기반으로, 사용자 요구에 맞춤형 결과물을 내놓는 AI 기술이다. 제임스 궈츠만 게임팀 총괄 파트너는 “2차원(2D) 그림, 3차원(3D) 모델, 음향 효과, 캐릭터, 맵 디자인까지 각 분야에서 생성 AI를 서비스하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연말까지 문자 입력을 통해 게임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자산을 생성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레이저 총이 달린 미래형 전차의 3D 모형을 만들어달라’고 입력하면, 게임 내에 쓸 모형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잭 소슬로 게임팀 파트너는 “게임 내 에이전트(NPC)는 인간을 위장하는 것을 넘어 인간 그 자체가 될 것”이라며 “1년 후에는 누가 AI고, 누가 사람인지 게임 속에선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커머스 생태계는 생성 AI에 접목이 시작된 ‘멀티모달’에 집중했다. 원래 AI는 텍스트를 학습하면 텍스트 결과물을 내놓고, 이미지를 배우면 이미지를 토해낸다. 하지만 멀티모달은 경계를 무너뜨린다.

브라이언 킴 컨슈머팀 파트너는 “AI의 비약적 발전은 음성에서 텍스트로, 텍스트에서 이미지로의 변환 등을 가능하게 했다”며 “창업자는 이 기술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올해 일상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AI 기반 제품이 다수 탄생할 것”이라고 했다.

판매자 측면에선 길이나 생방송 여부에 상관없이 영상 기반 상품 큐레이션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 하락의 대책도 강구됐다. 소비자 구매 비용(CAC) 감소를 방어하기 위해 기업 간 거래(B2B) 파트너십을 늘리는 방안이 활로로 제시됐다. 특히 메타버스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존 패션 브랜드는 물리적 의류 이외 디지털 자산을 통한 고객 만족감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패션' 분야에 돈을 쓰겠다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다.

바이오·우주 항공 '초대형 업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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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 소설에서 꿈꾸던 치료 방식이 다가왔다. ‘근접유도화합물’이 믿을 수 없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비니타 아가르왈라 바이오헬스팀 제네럴파트너는 바이오 분야에 새로운 ‘배달의 10년’이 찾아왔다고 보고서에서 썼다. 약품이 RNA, DNA, 단백질 등 미세 물질에 제대로 작용하기 위해선, 그만큼 신체 내 정확한 전달이 필요하다. 표적단백질분해제(PROTACs)와 같은 근접유도화합물이 핵심 키워드로 대두된 배경이다.

a16z는 분자 사이 작용을 잇는 이런 과정을 ‘배달’로 명명하고, 관련 기업이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용자 경험(UX) 개선도 중요해졌다. 비제이 판데 제너럴파트너는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는 소비자 의료 기술 회사가 될 것”이라며 “이미 세계 5대 기업 중 4개 기업이 소비자 중심 기업으로, 의료 분야 UX를 혁신하는 업체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여지가 있다”고 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경량화와 암호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연산 처리를 최적화해서 개별 단말에서도 빠르게 블록체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관심사가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보안 체계 구현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진행 중인 양자화 후 서명(아날로그 값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과정) 프로젝트와 자사 블록체인 알고리즘 구조가 잘 일치하는지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검증 가능한 지연함수(VDF)’도 새로운 암호화 기술로 거론됐다. 암호학에서 VDF는 입력값에 대한 출력 값이 알맞은 함수를 통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도구다. 블록체인 연산(거래 검증)을 살피는 데도 자주 쓰이는 기술이다.

기업들이 공통으로 숙지해야 할 변화상엔 SW 투자의 효율성과 차세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등장이 꼽혔다. 올해는 상당수 업체의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짐에 따라 실제 수익과 연결되는 SW 투자에 예산이 할당되는 경향이 짙어진다고 내다봤다. SaaS를 두고는 기존 시스템과의 경쟁이 본격화된다고 지적했다. 제야 양 엔터프라이즈팀 파트너는 “클라우드 기반 1세대 SaaS 플랫폼은 이미 구식이 됐다”며 “‘데이터 네이티브’로 사용자 환경을 10배 향상할 차세대 SW가 세일즈포스, 워크데이와 같은 기성 업체와 경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우주발사체 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 시리즈 발사 장면. 스페이스X는 지난해 한국산 부품 도입을 논의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 제공
미국 우주발사체 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 시리즈 발사 장면. 스페이스X는 지난해 한국산 부품 도입을 논의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 제공
국가 차원에선 우주 항공, 원자력, 산업용 로봇의 확장이 대세가 된다고 분석했다. 로켓과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원료와 제품은 너무나 방대해 한 나라가 모든 개발을 감당하기 어렵다. 라이언 매킨터시 아메리칸 다이나미즘팀 파트너는 “우주 항공 업계의 복잡한 글로벌 공급사슬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줄 기업과 창업자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MR은 아직 원자로 규제 개혁이 필요하지만, 미국 발전량 20%를 차지하는 핵에너지 업계를 혁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용 로봇은 일자리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효율을 끌어올리는 기술로 묘사했다. 올리버 쉬 파트너는 “단순 반복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해 근로자가 오히려 성과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