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 폭스바겐이 최근 “전기차 가격 인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차량 가격을 최대 20% 인하한 데 이어, 포드가 미국에서 전기차 가격을 최대 8% 낮춘 상황에서도 이들 업체는 ‘치킨게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GM은 지난 1일(현지시간)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제품 경쟁력과 가격이 이미 좋은 위치에 있다”고 전기차 가격 인하 가능성을 일축했다. 올리버 블룸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도 같은 날 독일 매체를 통해 “명확한 가격 전략을 갖추고 있으며 신뢰성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전기차 전환을 가속하는 와중에도 점유율 확대 목표를 내려놓은 것이다.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0% 미만으로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상태다. 테슬라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6.8%에 달해 지금보다 추가로 가격을 내릴 수도 있다. 더구나 전기차는 배터리 원자재 가격 탓에 내연기관차보다 생산 원가가 높아 대다수 업체가 적자를 보면서 팔고 있다. GM과 폭스바겐은 단기 점유율을 포기하는 대신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로이터는 GM의 전략에 대해 “테슬라, 포드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데 베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GM이 20억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수익성에 주안점을 둔 행보다. GM은 또 “플릿(법인용) 판매 비중이 지난 몇 년간 낮았는데, 렌탈 사업을 확대해 수익성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예외 조항인 전기차 렌털 및 리스 판매 비중을 늘려가려는 상황에서 경쟁자를 만나게 됐다.


폭스바겐은 가격 정책에서 안정성을 추구하며 소비자 신뢰를 먼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연식 변경이나 부분 변경 등 신차를 출시할 때만 가격을 조정하는 기존 정책을 고수한다. 이는 2026년부터 내연기관차에 거의 투자하지 않고, 전기차에 집중하겠다는 폭스바겐의 전략과도 맞물린다. 지금 당장 가격을 내려 적자 폭을 늘리기보다 적정한 가격을 통해 수익을 쌓아 3년 뒤부터 전기차에 ‘올인’하려는 구상이다.

하지만 테슬라의 가격 인하에 따른 수요 증가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들 업체가 언제까지 현재 가격을 고수할지는 의문이다. 테슬라가 지난달 6일 가격을 인하한 중국에서는 ‘계약 러시’가 빗발치고 있다. 로이터는 2일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공장 생산량을 2월과 3일 주당 평균 2만대로 늘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대기수요가 폭발했던 지난해 9월과 같은 수준의 생산량이다. 테슬라는 재고 증가에 따라 지난해 12월 생산량을 3분의 1로 낮춘 바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