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최대 수혜자가 튀르키예라는 분석이 나온다. 드론 수출로 경제 위기를 타개한 데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등과 다자 합의에 성공하며 외교적 입지를 강화해서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JS)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전쟁으로 인해 예상 밖의 혜택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전쟁을 계기로 통치력이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경제적 실리와 외교적 명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전쟁 초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에 자국산 드론을 판매하며 대규모 이익을 챙겼다. 터키산(産) 드론인 바이락타르TB-2를 수출하며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일조했다. 키이우를 공략하려던 러시아군을 패퇴시킨 주요 수단으로 꼽히며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튀르키예의 외교적 입지를 단숨에 바꿨다. 튀르키예의 인권 정책을 비판하던 서방국가의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 정부는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드론을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 바이락타르 TB-2로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동시에 외교적 입지를 강화했다.

동시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친선 관계를 과시하며 포로 교환과 곡물 수출 합의를 주도했다. 여러 차례 푸틴 대통령과 전화로 회담을 갖고 다자 합의를 이끌었다. 러시아의 고립을 완화하며 곡물 수출을 성사하며 중립 외교의 중개자로 떠올랐다.

튀르키예와 러시아가 손을 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다. 푸틴 대통령은 튀르키예를 지렛대 삼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분열을 꾀한다고 분석한다. 튀르키예는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벌어진 반(反) 튀르키예 시위를 명분으로 이들의 가입을 막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와 인접 국가인 스웨덴이 번번이 나토 가입에 실패했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은 서방국가의 자산 동결을 피해 튀르키예로 자금을 옮기기 시작했다. 튀르키예는 서방국가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적이 없다. 러시아는 튀르키예에 200억달러 상당의 천연가스 관련 채무 상환 시점을 연기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튀르키예는 리라화 환율 방어를 위한 유동성을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는 되레 러시아군에 1850만달러(약 231억원) 규모의 물자 수출을 허용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13곳의 튀르키예 기업이 미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업체 10곳에 플라스틱, 고무 등을 수출한 것이다. 이 원자재는 방탄복, 방탄 헬멧 등을 제작하는 데 쓰였다.

물밑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표면적으론 서방국가를 지원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튀르키예 여당 지지율은 지난해 1월 39.9%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11월 44.7%로 치솟았다. 오는 5월 총선과 대선을 앞둔 에르도안 대통령 입장에선 전쟁이 반등의 계기가 된 것이다. 전쟁 전까지 튀르키예의 리라화 가치는 반토막 났고, 물가상승률은 17%까지 치솟으며 탄핵 위기에 몰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7년 권력을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개헌을 통해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했다. 외신에선 그를 '튀르키예의 술탄(군주)'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야당은 반(反) 에르도안 연대를 구축했지만 마땅한 대선 후보를 발굴하지 못한 상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와의 협력도 강화하며 경제적 반등도 노리고 있다.

외메르 타슈프나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동 국가들과 밀월관계를 맺으려는 에르도안이 계속 권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은 에르도안을 튀르키예의 ‘술탄’으로 본다. 군주가 선거로 인해 권력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